[기고]국회의원 ‘합법적 부패 청산’이 민심 공약

기자 2024. 3. 1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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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를 ‘귀족정치’라고 일갈했다. 선거로 대표를 뽑는 걸 민주주의로 보지 않고 ‘귀족주의’로 불렀다. 선거판은 늘 학식과 돈 많은 사람들의 독무대이고, 그들은 대표로 선출되면 귀족들의 기득권을 챙긴다는 것이다. 일찍이 좌파 논객들도 자본주의 사회의 의회는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부르주아들의 ‘사교장’이라고 조롱했다.

4월 총선 거대 양당 후보들은 대체로 고관대작·고학력자·명망가 등 고소득·자산가들이다. 그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민생 현장에서 절망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민초들의 애절한 사연들을 정책·입법·제도로 담아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소득·자산·교육 수준으로 응축되는 ‘사회적 존재’는 정치적 사고·행동을 규정한다는 가설을 상정해보라.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경제 양극화라는 ‘눈물의 계곡’이 속절없이 깊어만 가는 현실은 거대 양당 독점 국회의 반민중성을 방증한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입만 방긋하면 ‘민생 민생’ 하며 유려한 감언이설로 국민을 가스라이팅한다.

국회의원은 180여개의 유무형 특권을 누린다. 불체포·면책 특권, 연봉 5억원(세비+후원금+사무실경비+차량유지비+명절휴가비), 보좌진 9명, 의원회관 내 각종 편의시설·병원·KTX·선박·비행기 무료 이용권, 45평 사무실 등. 심지어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은 월 120만원 연금도 받는다. 이 특권들은 헌법·법률로 보장된다. 실로 국회의원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고 대박을 터뜨리는 신의 직장이다. 이건 ‘제도적 특권’, 아니 ‘합법적 부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은 특권층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선거는 결국 현대판 ‘귀족’을 선출하는 절차에 불과한 게 아닌가.

유럽 강소국 의원들에겐 특권이 없다. 그들은 서류 가방을 들고 도보·자전거·지하철·소형자동차로 출근길에 나선다. 세비는 국민 평균 소득 수준이고 집무실 크기는 3~4평 정도이거나 공동사무실을 사용한다. 의원 후원금도 없다.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다. 예컨대 보좌관·의원실·금배지가 없는 의원직을 그저 파트타임 봉사직으로 여기는 스위스, 보좌관·관용차 등 특권은 없는데도 고강도 업무로 의원 이직률이 30% 안팎에 이르는 스웨덴 등. 의원 면면을 봐도 다양한 집단과 직업 출신들이다. 노조 출신 다수가 의원에 당선되고 총리 자리까지 오르곤 한다. 국회가 국민의 모습을 닮은 초상화이고 사회의 모양을 그대로 반영하는 축소판이다. 그러니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아이콘인 셈이다. 특권과 기득권, 권력과 부의 상징인 대한민국 국회의원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정치개혁안으로 내놨다. 그 제안은 ‘정치 다운사이징’을 겨냥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관으로서, 국민 정치혐오 정서에 기대 포퓰리즘에 편승한 반정치적·반의회적 발상이다. 의원 수는 오히려 확대해야 하고, 이에 대한 국민 설득·동의를 위해 국회의원 특권은 청산돼야 한다. 납세자로서 정당·후보들에게 호소한다. 국민 혈세 갉아먹는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공약하라. 그 핵심은 의원 세비(국민 중위소득 수준)와 보좌관(2~3명)을 대폭 감축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특권의 상징’이 아니라 유럽 강소국에서처럼 ‘봉사와 헌신과 희생의 상징’이 돼야 마땅한, 국민을 대표하는 신성한 직책임을 명심하라.

국회의원들의 불공정한 제도적 특권은 정치 엘리트 카르텔을 견고히 하는 합법적 부패다. ‘밥값’ 제대로 못하는 국회의원들, 도대체 왜 특권을 향유해야 하는가?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의 합법적 부패를 좌시해선 안 된다. 총선에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국회의원 특권 청산을 약속한 정당·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자.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정치학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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