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코언 “끔찍한 전쟁 난무… 신념없이 늙어간다는게 되레 기쁠 일”

김용출 2024. 3. 1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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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네타냐후’ 작가 조슈아 코언 이메일 인터뷰
네타냐후 총리 아버지 벤시온은
자국에서 거부당한 민족주의자
자녀들을 자신의 복수를 위해 길러
네타냐후 ‘시오니즘적 행보’ 단초
인류 구원하겠다고 하는 종교들
그 고향 예루살렘·팔레스타인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

“저 사람을 만난 적 있어요.” 블룸이 주름이 가득 잡힌 손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이때 CNN으로 맞춰져 있던 텔레비전 화면에 강경한 인상의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뉴욕 위쪽의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위치한 문학평론가 헤럴드 블룸(1930~2019)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편안하게 나누던 대화에 갑자기 미묘한 열기가 더해지던 순간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고 젊은 소설가 조슈아 코언은 블룸에게 물었다. “여기서요!” 블룸은 조금 높아진 톤으로 늘그막에 친구가 된 그에게 말했다. “아마 그가 열 살 때쯤이었을 거예요.” 그러면서 오래전 경험과 기억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야기라기보다 비화라거나, 짧은 스케치였다. 소설은 거기서부터 태어났다. 다만 먼저 자신에게 만남을 요청하며 다가온 블룸이 저세상으로 떠난 뒤에야 쓸 수 있었다고, 코언은 회고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조슈아 코언의 소설 ‘네타냐후’가 번역 출간됐다. 작품은 “수준 높은 스타일과 유희적 지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202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작가 제공 (c)Adam Gong
“어려움은 항상 있습니다. 때로는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어려움이 있고, 때로는 삶이 만들어내는 어려움이 있지요. 이 작품에선 주로 후자에서 비롯된 어려움이었어요. 저는 이 작품을 팬데믹 봉쇄 기간 중에 썼습니다. 외로운 시간이었고 아마도 그래서인지 코미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조슈아 코언의 장편소설 ‘네타냐후’(김승욱 옮김, 프시케의숲)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유대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2007년부터 소설을 발표해온 코언은 이 책으로 2022년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수준 높은 스타일과 유희적 지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소설은 네타냐후 총리의 아버지 벤시온 네타냐후의 미국 대학 취업면접 당시 이야기를 모티브로 그와 그의 가족을 맞게 된 유대인 교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젊은 역사학자 루벤 블룸은 뉴욕주 변두리의 코빈 대학에서 한 이스라엘 무명 학자 벤시온 네타냐후에 대한 채용위원회에 합류하게 된다. 1960년 블룸은 학과에서 가장 젊은 교수여서 면접을 보려는 벤시온 네타냐후 가족을 손님으로 맞는다.
“내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자동차 뒷문이 마침 열리면서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우르르 쏟아졌다. 의상을 완전히 갖춰 입고 나팔을 불며 접시 받기를 하는 광대들은 아니었지만 비슷했다. 무스탕 옷을 입은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세 명? 그동안 그들보다 덩치가 큰 어른 두 명이 인도 쪽 앞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반대편 문은 어딘가에 걸려서 열리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 두 어른이 완전히 똑같아 보여서 구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입은 것보다 크기만 클 뿐 똑같이 생긴 무스탕 외투로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막대 모양의 단추가 달린 똑같은 털외투 다섯 벌.”

블룸은 이렇게 나타난 벤시온 가족을 집에서 재워주고 인터뷰와 견본 강의 등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일련의 사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면접에서 신앙이 아닌 사실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벤시온의 대답.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적대관계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아주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사이의 적대관계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창조된 것이므로 파괴될 수도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믿음과 이 동그란 탁자처럼 영원히 언제나 되풀이된다는 믿음 사이의 적대관계를 언급하면서 이만 말을 마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막바지에 갈수록 황당한 소동극으로 치달아가는 소설은 미국 학계의 이면에 숨겨진 위선과 어리숙함도 드러내고,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예리한 풍자와 지적인 유머도 보여준다. 특히 무엇보다도 네타냐후 총리의 성장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그의 시오니즘적 행보와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단초를 볼 수도.

젊은 작가 조슈아 코언은 왜 네타냐후 총리 가족의 이야기를 써야 했을까. 퓰리처상 수상작이 그린 네타냐후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여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코언을 최근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메일로 만났다.
―실제로 이 정도의 소동이 있었던 것인가.

“저는 1959~1960년을 살지 않았다! 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책에 있는 모든 것은 제가 소파에 속옷 차림으로 앉아 있는 동안 실제 저의 상상 속에서 정말로 일어난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아버지 벤시온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소설과 실제 인물 간 공통점과 차이점은.

“벤시온 네타냐후는 유럽 중세사, 그중에서도 특히 종교재판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였다. 또한 완고한 사람이었고,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며, 자국에서 거부당한 민족주의자였다. 이것이 그가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된 이유였다. 그의 정치적 견해와 성격은 당시 이스라엘에선 지나치게 극단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러한 거부로 인해 벤시온은 많은 원한과 깊은 분개를 품었고, 자녀들을 자신의 복수를 위해 길렀다.”

―소설 내용과 현재 네타냐후 총리의 연계성을 어느 정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그는 열 살이었다. 쿠키를 먹고, 가구를 부수고, 동생의 고추를 튕긴다. 그런 행동들과 그의 15년 이상의 이스라엘 통치 정책을 연결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작품은 아무래도 아버지 벤시온을 그리고 있어서 네타냐후 총리의 모습을 많이 볼 수는 없다.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모습은 열 살배기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 수준이 보통이 아니다. “이디스는 눈을 꾹 감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찰라가 가방 안을 뒤져 둘둘 만 화장지를 찾아내서 이도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벤, 존? 의자 바꿀래?’ 하지만 베냐민은 동생의 잿빛 맨 몸 위로 몸을 기울여 아이의 고추를 손으로 튕기고 있었다. 칠라가 아이의 손을 찰싹 때리자 이도가 울부짖었다. ‘초코칩 똥 쿠키.’ 베냐민이 기저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초코칩 브라우니 퍼지 똥 쿠키.’”

1980년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유대계 가정에서 나고 자란 조슈아 코언은 2007년 소설 ‘슈나이더만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위한 카덴차’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타인들의 천국’, ‘위츠’, ‘민수기’, ‘움직이는 왕들’ 등을, 단편집 ‘새 메시지 네 개’, 논픽션 모음집 ‘주목’ 등을 발표했다. 마타널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저는 이스라엘 시민이기도 하며, 제 아내도 이스라엘인이다. 저희는 이 분쟁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를 잃었고, 그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저는 양국방안(the two state solution)을 지지한다. 책임 있게 말할 때는 그렇다. 나 자신이 되어 말씀드리자면, 1500만 국가 방안(15 million state solution)을 찬성한다고 하겠다. 각각의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하나의 국가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인간이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현재의 학살에 대해 웃음 짓는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 일하는 것뿐이다.”

기사를 읽는 이 순간에도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종교들의 고향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선,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전쟁의 양극단에선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한 하늘 아래 결코 함께 살 수 없다는 총알 같은 신념이나 그것을 선동하는 이들의 악다구니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저 끔찍한 남자와 그의 끔찍한 아내를 만나고 나니 내가 뭔가 깨달음을 얻었어. 내가 이제는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는 깨달음.” 소설 속 루벤의 아내 이디스의 고백이야말로 이런 야만의 신념이나 악다구니에 대한 세계 시민의 부고장인지도. “아니, 그냥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래도 상관없어. 믿음이 전혀 없는데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가 아니라 기뻐? 내가 신념 없이 늙어간다는 게 기뻐?.”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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