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관객 8부 능선 넘은 ‘파묘’ 흥행 비결은

송은아 2024. 3. 1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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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헤치고 싶었던건 역사의식… 묘한 공감, 억눌린 한풀어
‘잘못된 것 교정’ 메시지 쉽게 풀어
‘0301’ 차 번호·독립운동가 이름 등
시대정신, 관객 원하는 곳 긁어줘
OTT 등으로 자극에 익숙해져
소비자들 무리없이 ‘오컬트’ 수용
김고은·최민식 등 열연도 한몫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파묘’가 지난 주말 1000만 관객을 향한 8부 능선을 넘었다. 휴일 이틀 동안 100만명을 끌어모아 누적 관객 804만명을 기록했다. ‘파묘’의 이례적인 흥행에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 내용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시대정신과 소통한 메시지가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12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 19일째인 전날까지 누적 관객 817만명을 기록했다. 9일 55만9681명, 10일 47만2301명으로 휴일 이틀간 총 103만명을 불러들였다. 영화계에서는 ‘파묘’가 이 기세를 이어가면 오컬트 장르로는 처음으로 ‘1000만 영화’에 등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파묘’ 개봉 초기에는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는 잘 돼도 최대 수백만명’이라고 내다보는 의견이 많았다. ‘파묘’의 흥행은 이런 장르 자체의 열세를 딛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 영화가 소구한 주 요인으로는 관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점이 공통으로 꼽힌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이 땅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메시지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낸 것이 한몫했다.

김성수 영화평론가는 “이야기 자체의 흥미, 대중적 재미도 있지만 우리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발굴했다는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다”고 해석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역시 “중간에 장르 영화를 넘어서서 감독이 가진 역사의식을 드러냈고 이것이 우리 시대와 맞물렸다”고 봤다.

이들은 ‘파묘’를 “굉장히 잘 기획된 상업영화”(김 평론가)이자 “대중적 화법의 성공”(전 평론가)으로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이 영화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인물의 이름, 자동차 번호 등을 통해 드러내놓고 한다”며 “3·1절 전후로 관객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을 정확히 꿰뚫고 억눌린 감정을 해소시켰다”고 했다. 전 평론가 역시 “영화가 후반에 크리처물(괴물·정체불명의 존재가 나오는 장르)로 가는데 이 선택이 적중했다”며 “요즘 한국 관객은 확실히 보여주고 들려주는 걸 선호한다”고 전했다.

일례로 ‘파묘’의 주인공인 상덕, 화림, 영근, 봉길은 실제 독립운동가들 이름이다. 이들의 차량 번호는 삼일절(0301) 광복절(0815) 광복연도(1945)와 같다. 누리꾼들이 이같이 힌트를 찾아내면서 영화를 둘러싼 공론장의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졌다. ‘파묘’ 주인공 4명이 묘를 들여다보는 장면에 한반도 지형을 숨긴 팬아트까지도 나왔다. 제작사 측은 이를 참고해 ‘특별포스터’로 화답했다.
한반도 지형을 넣은 ‘파묘’ 특별 포스터. 쇼박스 제공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오컬트 장르 자체의 문턱이 낮아진 점, 모든 게 불확실한 요즘 무속·풍수가 관객의 마음에 가닿은 점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불완전한 현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어하는 대중적 심리가 있었고 영화가 이런 가려움을 정확하게 짚어줬다”며 “OTT를 통해 자극적인 소재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오컬트를 흥미롭게 소비할 여건도 만들어졌다”고 봤다.

각 세대가 매력을 느낄 만한 내용들이 고루 있는 데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큰 흥행 동력으로 작용했다. ‘파묘’ 홍보 관계자는 젊은 세대에는 오컬트 장르, 중장년층에는 무속·풍수 등이 친숙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출연진 역시 상대적으로 20·30에 인지도가 높은 김고은·이도현에 ‘연기 달인’ 최민식·유해진이 더해져 전 세대를 아울렀다.

전작인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관객층이 이미 형성됐던 것도 초반 흥행세에 불을 붙였다.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견제 발언을 하면서 노이즈 마케팅 효과도 발생했다.

원 교수는 “오컬트 영화가 천만을 바라볼 수 있는 건 희망적”이라고 평했다. 그는 “우리 시장은 문화산업을 개척할 때 대중의 취향과 선호도를 파악해서 영악하게 가는 걸 잘하다 보니 새 시장·영역이 개척되지 않았다”며 “‘파묘’의 이례적 흥행은 문화산업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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