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이 가져온 실질적 이익, 데이터가 보여줬다”
“제가 가진 가장 큰 우려는, 전체 생태계 및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문자 그대로 완전히 말살시킬 수 있는 사업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현재 막혀 있지 않은 구간을 통해 바닷물이 드나들기만 하면, 이곳의 갯벌 생태계는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됩니다.”
2004년 독일의 갯벌 전문가인 아돌프 켈러만 박사가 한국 법원에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당시 켈러만 박사는 자신의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의 갯벌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기 위한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서울행정법원은 2003년 방조제 공사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본안 소송에서 정부가 잇따라 승소했고, 결국 2006년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다. 새만금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만들어졌다.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간척사업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갯벌 생태계는 메말라가고 있다.
갯벌을 이용하던 주민들의 반발
켈러만 박사는 소송이 끝난 뒤에도 한국의 갯벌 등 연안 생태계에 관심 갖고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생태지평연구소와 환경운동연합 등 한국의 환경 관련 단체들로부터 2009년 ‘한국갯벌보전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2016년까지 국제해양탐사협의회(ICES) 과학위원장을 지냈고, 2022년 세계에서 가장 넓고 훼손되지 않은 갯벌습지인 바덴해(와덴해) 공동사무국(CWSS) 태스크그룹 의장을 맡기도 했다.
2024년 2월16일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프리드리히슈타트 외곽에 있는 켈러만 박사의 집을 찾았다. 흰색 수염이 입 주변과 턱을 뒤덮은 그가 현관에서 <한겨레21> 취재진을 맞았다. 보통의 서양권 문화와 달리 신발을 벗고 들어간 집 안에서는 낯익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진열대 안에 한국에서 받은 감사패가 전시돼 있었다. 그 위로 돌하르방과 나무 장승 조각이 보였다.
<한겨레21>은 켈러만 박사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어떻게 갯벌을 잘 보존하면서 해양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었는지, 재자연화 과정에서 어떤 갈등과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그것을 해결했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일흔한 살 노학자의 눈빛은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더 또렷해졌다.
—한국에선 ‘복원’이나 ‘자연보호’ 개념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독일은 예전부터 보호나 복원 작업이 잘 이뤄진 것 같다.“독일도 (처음부터) 자연이 친구가 아니었다. 자연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늘 폭풍과 홍수에 시달렸다. 방조제나 둑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했다. 또 이쪽은 물범 사냥이 굉장히 유행한 지역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연을 경제적으로 활용하고 사냥하는 것, 그게 중요했다.”
—그런 기조가 바뀌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1960년대 말에 큰 학생운동이 있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정부가 하는 모든 정책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 속에 1970~1980년대부터 급진적 산업화로 인한 부작용이 눈에 보이게 됐다. 공기가 나빠졌고 산성비가 내렸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합했다. 이를 통한 구체적인 변화가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일이다.”
독일엔 갯벌을 보유한 주가 3개 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과 함부르크, 니더작센이다. 이 가운데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갯벌이 1985년 가장 먼저 갯벌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니더작센 해안의 갯벌은 1986년, 함부르크 해안의 갯벌은 199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자연을 보호하겠다며 구역을 지정하는 일은 늘 반대에 부딪힌다. 일상적으로 그 공간을 사용해온 주민들과의 갈등도 비일비재하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모든 출입과 활동이 금지된 것은 아니었음에도, 갯벌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주민들과 마찰이 생겼다.
—국립공원 지정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나.“지역 주민들은 규제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의 저항에 바로 부딪혔다. 이쪽 지역은 관광업 역사가 굉장히 오래됐다. 19세기부터 관광업을 시작했고,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주민들이 점차 보호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다.”
11년간 국립공원 지정의 과학적 효과 밝혀
—어떻게 주민들의 생각이 그리 바뀔 수 있었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을 때 정부는 지역 주민들과 약속한 게 있었다. 이런(국립공원 지정) 게 의미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밝히겠다는 거였다. 독일 정부는 당시 4천만마르크(당시 환율로 약 125억원)라는 큰 예산을 투입해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했는데,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었다. 11년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첨예한 쟁점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밝히고 (자연보호로 얻는 것을) 증명하는 데 노력했다. 단순히 자연과학 연구만 하지 않고 사회경제적 연구도 병행했다. 국립공원 지정이라는 투자를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성과가 나올 수 있는지, 그 성과를 주민이 가져가는지 기업이 가져가는지 등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실제 자연이 보존되는 국립공원이 되면서 관광객이 더 많이 몰렸고, 주민 사이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켈러만 박사가 말한 독일 정부의 프로젝트 결과 보고서는 1995년에 나왔다. 애초 목적은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의미에 관한 연구였지만, 보고서는 단순히 지역 주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데만 사용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보호 지역을 더 확대하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그 결과 1999년 국립공원을 확장하는 취지의 국립공원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연구를 통해 보호구역을 확장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겼나.“모니터링으로 몇 가지 결과를 얻었다. 우선 조류가 급증했고, 물범 개체수도 아주 빠르게 늘어났다. 염습지 종류가 다양해졌고, 자연 상태로 회복하는 염습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갯벌) 인근 주민들의 변화다. 이들이 국립공원에 엄청난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립공원에 손대어 바꾸면 안 된다는 강한 의식이 생겼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돼도 관광으로 실질적 이익을 얻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안정되고 넓고 생물다양성도 엄청난
—최근에는 자연보호나 복원과 관련해 갈등은 없나.“어업과 관련한 갈등이 있다. 홍합 양식의 경우 어민들과 정부가 합의했기 때문에(‘바덴해 홍합은 누가 키워? 양식 합의의 전말’ 기사 참조) 안착됐지만, 새우와 관련해선 갈등이 진행 중이다. 철저한 자연보호주의자나 정부는 새우잡이를 금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새우잡이도 이쪽 지역의 정체성 중 하나인데 이를 없앤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자연보호 혹은 복원이 아니라, 보호할 건 보호하고 기존 주민들의 활동도 어느 정도 보존해줘야 한다는 말인가.“그렇다. 그래서 항상 협의해야 하고,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특히 어업과 관련해선 금지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업 생태계를 아주 어렵게 한다.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 가족기업이다. 비싼 배를 하나씩 사서 대대손손 물려받는 형식으로 돼 있는데, 당장 어업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이들에게 엄청난 리스크다. 명확하게 정책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논의는 불안만 조장한다고 본다.”
—그동안 한국 갯벌에도 방문했고 재판 증인을 서는 등 한국 상황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 갯벌은 어떤 갯벌인가.“한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도 넓다. 특히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엄청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한국 갯벌에는 770여 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한다. 바덴해엔 400여 종이 산다.) 북한까지 포함하면 (해양생물종이) 더 많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등재되지 않은 종이 많다. 또 바덴해처럼 폭풍 같은 게 잘 없어 조용하고 안정됐다. 정말 아름답다.”
—새만금과 관련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함께 싸웠던 세월이 벌써 20년이 지났다. 새만금엔 결국 방조제가 들어섰고 여전히 간척사업이 진행 중이다.“하나의 큰 비극이다. 굉장히 안타깝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듯해서 늘 가슴이 찔렸다. 그때(20여 년 전 소송 당시) 승리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지금 과거의 모습을 되살리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둑을 열어야 한다. 최소한의 해수라도 유통시키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다.”
“충남의 해안선 복원 계획은 어떻게 됐나요?”
인터뷰 말미에 켈러만 박사가 취재진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최근 한국의 충청남도라는 곳에서 해안선 복원과 관련한 계획이 있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됐나요. 실현이 됐나요?”
켈러만 박사가 언급한 충남의 해안선 복원 계획은, 서산시와 태안군에 걸쳐 있는 호수인 부남호에 해수를 유통시켜 생태를 복원하면서 이곳을 해양생태관광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역간척사업을 말한다. 켈러만 박사는 2020년 충남도가 주최한 ‘연안·하구 생태복원 국제 콘퍼런스'에 발표자로 참여했다. ‘부남호 역간척을 통한 지속가능한 가치창출 방안 모색’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굉장히 긍정적이었고 기대도 많이 됐어요. 한국에서도 이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생각했거든요.”
켈러만 박사가 기대했던 부남호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부남호뿐만 아니다. 복원과 보존이 필요한 한국의 수많은 하구와 갯벌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한겨레21>은 창간기념 2호(제1505호)에서 그 현장을 찾아간다.
프리드리히슈타트(독일)=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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