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농성자에 ‘방한용품 지급’ 인권위 조사관에 “월권”이라니
조모씨(51)는 55m 굴뚝 위에서 겪은 살 에는 추위를 잊지 못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울산본부 알코올지회 조직차장인 그는 해고 노조원의 복직 등을 요구하며 한국알콜산업 울산공장에서 지난달 17일부터 14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다.
사측은 농성 장기화를 우려해 조씨 등에게 ‘최소한의 물품’만 제공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루 한 끼 식사와 물 한 통이 전부였다. 조씨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농성 6일 차인 지난달 22일 조사관이 다녀간 뒤 이불 한 채가 제공됐고 밥 세 끼가 올라왔다.
노조 측은 지난달 21일 ‘경찰의 고공농성 노동자에 대한 식수 및 방한 물품 등 반입 제한’에 대한 긴급구제를 인권위에 신청했다. 지난달 18일과 20일에도 진정을 넣었다.
조씨는 12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살고 싶어 굴뚝에 올라갔는데, 막상 회사가 최소한의 것도 올려주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이럴 바엔 죽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인권위 조사관이 다녀간 이후 조씨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조씨는 지난 2일 동료와 함께 굴뚝에서 내려왔다. 그는 “그 조사관 덕에 살아 내려올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조씨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표현한 인권위 조사관의 현장 조치는 지난 11일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논쟁거리가 됐다. 김용원·이충상 등 일부 인권위 상임위원이 이 조치가 “권한 없는 월권”이라고 비판하면서다.
두 상임위원은 절차와 권한의 문제를 지적하며 “조사관이 판관 노릇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긴급구제조치는 위원회가 소집돼서 조치하도록 권고하자고 결정한 뒤 집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상임위원도 “조사관이 개입해서 권한이 없는데 월권을 한 것”이라고 했다. 조사관 현장 조치가 권한 밖의 일이며 위원회 의결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취지다.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은 조사관의 조치가 ‘논란거리’가 된 것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농성 당시 현장에 있던 조합원 A씨는 “조사를 하러 왔다가, 보고하고 절차 밟고 다시 현장에 오려면 2~3일 정도는 걸릴 텐데, 그사이에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다. 조씨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조치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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