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데리고 출근, 당연한거 아닌가요?”…사무실에 장난감·기저귀 교환대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2024. 3. 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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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독일 튀링겐주 알텐부르크에 있는 한 광장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잡기 놀이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독일에선 일·가정 양립 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아이를 둔 직장인들이 큰 불편 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사진 = 알덴부르크시 홈페이지]
지난달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의 베토벤거리. 독일 연방재건은행(KfW) 프랑크푸르트 본사에 다니는 워킹맘, 워킹파파들은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 손을 잡고 재건은행의 사내 유치원으로 향했다. 4살 아들을 맡기러 온 워킹맘 셰퍼(38)씨는 “독일에선 아이를 갖는 것과 직장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 당연히 공존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회사 역시 부모들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준비하고 있어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하며 인구 위기에서 허덕이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저출생 문제를 상당부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4년 1.2명까지 떨어졌던 합계출산율은 2007년 1.4명을 넘어선 뒤 지금까지 1.4~1.6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 인구위기 극복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게 기업의 ‘일-가정 공존’ 제도 강화다. 부모 직원들도 아이를 가진 채 노동시장에 남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일터 환경을 구축하지 않고선 출산율 반등이 쉽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시빌 바우에른파인드 재건은행 대변인은 “직원들의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재건은행의 오래 전통”이라며 “직원들이 직장에 복귀하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재건은행은 사내유치원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육 수요에 걸맞은 맞춤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자녀 사무실(Eltern-Kind-Buro)’이 대표적이다. 직원이 아이와 함께 상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무실에는 업무책상 위에도 장난감과 기저귀 교환대, 유아용 침대등 어린이 친화적인 시설이 마련돼 있다. 휴일에도 직원들이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만 6세 이하의 어린이를 위한 긴급 돌봄기관 ‘백업 센터’도 운영한다. 유치원이 휴원 등 피치못할 사정으로 운영이 어려울때 서로 모르는 아이들을 단기적으로 돌볼 수 있는 기관이다.

원격근무와 탄력근무는 독일에선 당연한 제도다. 최대 3년의 육아휴직 기간동안 본인이 원하면 주 30시간 가량의 단축 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 단축 근무에 따른 공백을 메우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바우에른파인드 대변인은 “대체근무를 위한 시간제 직원이 풀타임으로 일하는 비율은 80% 수준이고, 여성 직원의 경우 출산후 짧은 휴직기간을 가지고 돌아오는 게 일반화돼 있다”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정부와 기업은 물론 지역사회도 일-가정 공존을 위한 파트너다. 2004년 출범한 지역가족연합(Lokale Bundnisse fur Familie)은 각 지역의 기업과 시민사회, 지자체가 손잡고 스스로 가족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작년 기준 전국 520개의 지역가족연합에 7900여개의 기업 회원을 포함 총 1만8900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독일 니더작센주 인근 올덴부르크 뮌스터란트의 지역가족연합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1992년 20개 기업의 연합체로 시작한 ‘뮌스터란트 연합’은 지난해 5월 기준 1만4000명 이상의 종사자를 둔 177개 기업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방학중 아동돌봄 비용 지원’이란 제도로 지역사회의 돌봄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뮌스터란트 지자체는 그간 방학기간 돌봄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해 가계에 경제적 부담을 가중했다. 부모들은 방학중 자녀를 돌보기 위해 연차를 나눠 사용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휴가기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지역가족연합’이 매년 75유로(약 10만원)의 연회비중 일부를 방학중 돌봄 비용지원기금에 건네 돌봄 절벽간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이같은 일-가정 공존을 위한 정부, 기업, 지역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은 한국에선 아직 갈길이 멀다. 특히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300명 미만 중소기업 407개사에게 출산·양육 지원제도 사용에 따른 업무공백 해소 방식을 묻자 ‘대체인력 고용 없이 부서 내에서 해결한다’는 응답이 50.1%로 절반을 넘었다. 대체인력을 추가 고용했다는 기업은 24.6%에 불과했다.

독일 비스바덴 연방인구연구소 마틴 부자드 소장은 “현대 사회에서는 남녀 모두 일을 하고 싶어하고 충분한 수입을 얻어야 충분한 돌봄을 제공할수 있다”며 “근로자들에게 일터로 복귀해도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고 충분한 소득을 담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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