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7일 만에 공식 경기 등판한 류현진은 역시 빅리거다웠다
KIA와 한화가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치른 1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는 평일임에도 마치 휴일처럼 팬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을 평정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위력을 떨친 ‘괴물’ 류현진(37·한화)이 2012년 이후 12년 만에 공식경기 첫 선발 등판하는 날. 오전에 잠깐 비가 뿌리고 오후에도 비가 예보됐지만, 류현진의 투구를 직접 보겠다는 팬들의 열망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9, 10일 주말 시범경기 만원 관중(1만2000명)에 이어 12일에도 약 3500명이 이글스파크를 찾았다. 아예 월차를 내고 서울에서 내려와 새벽 5시 반부터 야구장 앞에서 줄 서 기다린 열성 팬도 있었다.
2012시즌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건강할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류현진은 2012년 10월 4일 넥센과의 정규시즌 최종전 이후 4177일 만에 공식경기 마운드에 올라 자신을 보러온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4이닝 동안 62개의 공을 던지며 3안타 3탈삼진 1실점 했다. 점수를 주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78승, 2019년 평균자책점 1위(2.32)다운 관록이 더 돋보였다. 전 세계 프로리그 중 최초로 도입되는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 때문에 심판의 관용이 단 1㎜도 허용되지 않은 환경에서도 마치 존을 훤히 꿰고 있기라도 한 듯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정교하게 공략하면서 타자와의 싸움에서 우위에 섰다. 물론 1회 KIA 이우성에게 2루타를 맞기 앞서 승부구로 던진 공이 볼 판정을 받자 아쉬운 표정을 짓는 장면도 있었다. 류현진의 이날 직구 최고 구속은 148㎞. 최저 101㎞가 찍힌 커브와 체인지업, 커터를 고루 섞어 던졌다.
이날 피칭의 백미는 자신의 천적 중 하나였던 최형우(41), 그리고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32)를 상대로 잡아낸 삼진이었다.
최형우는 최정(SSG)과 함께 ‘류현진의 천적’으로 통했다. KBO리그 통산 류현진 상대 성적이 40타수 16안타(4홈런)일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2회 최형우를 몸쪽 높은 볼 헛스윙을 유도해 삼진을 잡아냈다. 과거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좌타자 몸쪽 승부에 최형우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류현진은 KIA 타선의 중심인 소크라테스를 1회 2루 땅볼로 처리했고, 4회 두 번째 맞대결에서는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초구 느린 커브, 2구째 높은 패스트볼, 3구째 낮은 패스트볼이 ABS존 바깥쪽 라인(좌타자 기준)을 살짝 걸쳐 ‘로봇심판’의 콜을 불러냈다. 류현진은 이날 2회 한준수, 4회 김선빈의 타구에 두 차례 맞았으나 큰 문제가 없다는 동작을 취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류현진이 구위와 제구 모두 안정감 있는 투구를 보여줬다”며 “개막에 맞춰 컨디션을 잘 끌어올리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류현진은 경기 후 “팬들 함성이 커서 재미있게 기분 좋게 던졌다. 목표로 했던 이닝을 다 하고 내려왔고, 스피드가 생각보다 잘 나와 전체적으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고 만족했다. 그는 ABS존에 대해 “스트라이크존에 안 들어갔으니 볼 판정이 나왔을 것”이라며 “다만 타자들마다 존이 달라져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류현진을 상대해 적시타를 때리고 두 번째 타석에서도 좋은 타구를 기록한 KIA 김도영은 “모든 구종이 완벽했다. 제구력이 워낙 뛰어나고 빠른 공이 구속에 비해 힘이 좋았다. 값진 경험을 했다”고 류현진을 처음 상대한 소감을 밝혔다.
현재 류현진은 개막전에 등판한다는 스케줄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12일 경기에 이어 17일에는 사직 롯데전에서 시범경기 마지막으로 등판한 뒤 23일 잠실에서 열리는 LG와의 개막전에 등판할 예정이다.
한화는 KIA를 9대1로 이겼다. 이날 한화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문동주는 2이닝 1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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