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미스트롯3`은 여전히 강력했다

2024. 3. 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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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미스트롯3'이 결승전 시청률 19.5%(닐슨 전국 기준)를 기록하면서 막을 내렸다.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확인한 셈이다. 물론 과거 '미스트롯2'의 32.9%, '미스터트롯1'의 35.7%보다 낮은 수치이긴 하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역사적인 수준의 초현실적 인기를 누린 것이어서 그런 신드롬을 재현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

후속작의 인기 하락은 필연인데, 하락할 때 하락하더라도 완전히 좌초하느냐 아니면 어느 정도의 위상을 지켜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번 '미스트롯3'은 적어도 인간계 최고 프로그램의 위상은 지켜냈다. '미스-미스터트롯' 초기 시리즈의 인기가 현실을 넘어선 천상계 차원이었다면 '미스트롯3'은 현실적인 수준에서 성공 프로그램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번 경연에서 뽑힌 1위 정서주(16), 2위 배아현(28), 3위 오유진(15), 4위 미스김(23), 5위 나영(20), 6위 김소연(20), 7위 정슬(24) 등 톱7의 평균 나이가 20.8세에 불과하다. 이들로 인해 새 바람이 불면서 우리 전통가요계가 더욱 신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스트롯'이 나타나기 전까지 트로트는 사멸해가던 장르였다. 일제시대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음악이 우리 전통 음악과 섞이면서 형성된 것이 트로트다.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한 음악이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인 미국식 음악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자, 나훈아 등이 나타나면서 트로트의 시대를 이어갔다. 그렇게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엘리트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야 했다. 우리 전통가요를 뽕짝이라고 하면서 저질 퇴폐 음악 취급한 것이다. 70년대에 문화예술계 병역특례 제도를 만들면서 대중예술을 배제한 것에도 이런 저질 퇴폐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엘리트들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트로트는 고도성장 시기에 우리 국민의 시름을 달래줬다. 당시 노래들은 어머니나 고향을 그리는 구슬픈 내용이 많다. 산업화 때 이촌향도 열풍으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도시는 결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도시 생존경쟁의 전장에서 하루하루 버텨냈던 고도성장기 국민 곁에 트로트가 있었다.

중화학공업화가 1차적으로 이루어진 후 80년대에 신세계가 열렸다. 경제성장의 초기 과실을 향유하게 된 한국인은 관광버스를 타고 국내 여행에 나서게 됐다. 구슬픈 정서보다는 보다 활기찬 음악이 요청됐던 시기다. 그때 화려한 꺾기로 무장한 주현미 등이 나타나 트로트의 변신을 이뤄냈다. 주현미는 관광버스 테이프 음악을 통해 급부상했고, '비 내리는 영동교'나 '신사동 그 사람' 등을 통해 강남개발의 열기도 담아냈다.

이렇게 우리 현대사와 함께 해온 트로트는 90년대에 위기를 맞았다. 한강의 기적이 완수되자 젊은이들이 서구 문화를 본격적으로 향유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댄스음악, 힙합 등의 열풍이 불었고 음악방송은 아이돌 팬들이 장악하게 됐다. 그에 대한 응전으로 트로트계에선 2000년대 초에 장윤정, 박현빈 등이 나타났다. 댄스음악을 가미한 뉴트로트가 등장한 것이다. 그때 잠시 반짝했으나 한류 케이팝 전성시대의 거대한 흐름 앞에 모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트로트는 존재감도 없고 역동성도 없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행사 시장을 지키는 그런 종류의 음악으로 박제됐다.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 이외의 쇼프로그램에서 배제됐고, 예능에도 중견 스타급만 간간이 얼굴을 비칠 뿐 새 얼굴들은 전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 트로트 약세기가 극에 달해 트로트가 메인스트림 무대에서 거의 사멸 직전에 처했을 때 '미스트롯'이 나타났다. 처음에 언론의 반응이 매우 부정적이었지만 국민의 열광적인 성원으로 '미스-미스터트롯' 시리즈가 역사적인 수준의 성공을 거뒀고 트로트의 대부흥을 이끌어냈다. 특히 트로트 신예 스타들을 속속 발굴해, 오랫동안 정체됐던 이 장르에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쇼예능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연령대가 어려진 이번 톱7을 통해 트로트계의 세대 교체가 가속화될 것이다.

다만 시청률과 화제성이 지속적으로 하락추세라는 점은 아쉽다. 트로트 경연 신드롬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트렌드가 꺾일 시점이긴 하다. 하지만 트로트는 우리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해온 특수한 장르이기 때문에, 새 얼굴을 발굴하고 볼 만한 쇼를 제공한다면 국민신드롬까지는 아니어도 인기 프로그램의 위상 정도는 계속 유지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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