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균 칼럼] 3無 합작품 `홍콩 ELS` 참사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게다. 배신감을 넘어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평생 모든 쌈짓돈을 들고 찾아간 은행창구. "안정적이고 수익률도 높은 상품이 있다"는 은행 창구직원의 말에 솔깃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원금 손실이다. 투자자들은 "은행원에 피싱사기를 당한 기분" "은행에게 전세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인지상정이다.
상품을 판 은행도 최대 2조원에 달하는 손해 배상금을 물어내야 할 처지다. 당장 순이익에 막대한 타격이 생기고, 배상 과정에서 배임으로 소송을 당할 처지다.
홍콩 H(항셍)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참사는 우리 금융산업의 후진성을 민낯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금융사의 소비자 보호 노력도 금융당국의 의 경고음도 없었다. 과거로부터의 학습효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은행·증권사 등 상품 판매사부터 들여다보자. 금융감독원이 11일 발표한 검사결과에서 드러난 불완전 판매실태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노출했다. 판매사들은 과도한 영업목표를 설정해 무리한 실적 경쟁을 유도하고, 부적절한 성과지표 등을 통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했다. 반면 소비자보호를 위한 판매한도 관리 등에는 소홀했다. 금융사 차원에서 불완전판매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실제로 2021년 6월 S은행 판매 직원은 87세 D씨가 청력이 약해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으나 '이해했다'고 답할 것을 반복 요청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피해 사례다.
금융사들은 과거 키코 사태,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등을 거치면서 '불완전 판매'의 중요성을 학습했다. 하지만 구조적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파묻혔다. 매는 맞았지만 '각성'(覺醒)은 없었다.
금융당국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사전 예방·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21년 금융소비자보험법을 통해 투자자 보호책은 마련했다. 하지만 '홍콩 ELS' 계좌가 39만6000개나 만들어지고 18조8000억원의 투자금이 몰리는 '과열 양상' 속에서도 제 때 경고음을 내지 못했다. 금융사 곳곳에 전관 낙하산을 꽂은 막강한 금감원의 정보력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금감원 역시 집단 '설마병'과 구조적 모럴해저드에 빠진 것이다. 그나마 참사 후에도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다. '반성'(反省)조차 없었다.
당국의 개입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당국이 배상 기준안 마련부터 사실상 자율배상 결과까지 챙기겠다는 뜻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과도한 개입으로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배상 기준안을 발표하면서 "자기투자책임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배상 기준안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의 판단은 다르다.
우선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적정하느냐 하는 문제 제기다. 금융사와 투자자간의 분쟁에 감독당국이 기준을 내놓는 게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금감원 측은 "당국에서 개입하지 않으면 수많은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당국의 직접적인 개입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준 제시 정도로 봐달라"고 했다. 이해는 가지만 원칙은 훼손한 것이다.
이 원장의 '제제와 자율배상의 병행' 발언도 논란거리다. 자율배상에 적극 나서면 과징금을 줄여줄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금융권 한 인사는 "당국이 배상 기준안을 내놓고, 제재 경감을 미끼로 자율배상까지 유도하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라면서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아주 잘 드는 칼을 손에 쥔 당국이 총선을 앞두고 아예 '해결사'를 자처한 것 같다"고 평했다.
총선까지 한 달도 안 남았다. 곳곳에서 원칙이 훼손되고 정책 스텝이 꼬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선거 때보다 현실성이 결여된 장밋빛 청사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기본이고 야당도 예외는 아니다. 오죽하면 총선 후가 더 두렵다는 말이 나올까. 원칙은 쉽게 훼손된다. 훼손된 원칙을 다시 세우기는 어렵다. 몇 배의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이는 상식이다.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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