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국회의원 ‘남성 할당제’는 어떤가

최혜정 기자 2024. 3. 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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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2024 총선 여성주권자행동 ‘어퍼’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차별과 폭력, 불평등에 맞서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할 정치를 만들 것’을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혜정 | 논설위원

4·10 총선을 한달 앞두고 각 당의 시끌벅적한 공천도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 ‘친윤불패’ ‘비명횡사’ 등 각 당의 공천 특징을 담은 신조어가 난무하고, ‘물갈이’ 기조 아래 일부는 새 인물로 바뀔 것이다. 그럼에도 22대 국회의 얼굴은 이미 정해져 있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50대 이상의 고학력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아직 비례대표 공천이 남긴 했지만, 거대 양당의 지역구 공천에서 여성 비율은 여야 공히 10% 초중반대에 머물고 있다. 본선 승리 또는 비례의석으로 원내에 진입하게 될 여성 의원의 수는 이번에도 20%를 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여성 의원 비율 19.2%로 국제의회연맹의 190개국 가운데 121위로 ‘바닥권’에 있다는 현실이 다음 국회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여야 모두 당헌에 지역구 여성 30% 공천을 명문화했고, 선거법엔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권고 규정이라는 이유로 가볍게 무시된다. 당연하게도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국가의 주요 정책 및 제도를 입법화하는 국회가 성별 균형을 확보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동등한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스웨덴 정치학자 드루데 달레루프는 조직 내 여성이 30%라는 임계수치에 이르지 못한다면 실질적 대표성을 갖기 어렵다는 ‘결정적 다수이론’을 제시했다. 여성 의원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은 경우,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정당의 이해에 복무하는 경향을 높게 띤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2000년 여성 공천 할당제가 법제화된 뒤 몇차례의 개정을 거쳐 ‘비례대표 50% 공천 의무화, 지역구 30% 공천 권고’라는 현행 제도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여성의 저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한 할당제는 혐오와 낙인의 대상으로 전락해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지역구 여성 공천을 꺼리는 이유로 ‘여성이 당선 가능성이 낮다’ ‘공천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곤 한다. 하지만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가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이 회원인 한국여성의정 의뢰로 조사한 ‘여성 국회의원 후보자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를 보면, 후보들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소속 정당, 현직 여부, 후보의 직업 등의 차례인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 변수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여성이 당선에 불리하다는 통념이 현장에선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적합한 사람이 없다’는 주장은 ‘찾아보기는 했나’라는 반박으로 돌아온다. 오히려 거대 양당은 여성 입지를 축소시키는 쪽으로 제도 개악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다. 여성 지역구 공천 30% 의무화 등 여성 정치 확대를 위한 선거법·정당법 개정안 10개가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논의 테이블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폐기될 예정이다. 여야는 여성정치발전비를 국가에서 지원받아 당직자 인건비로 소비하고, 지역구에 여성을 30% 이상 공천해야 받을 수 있던 여성추천보조금 제도는 여성 공천을 10%만 넘겨도 차등 지급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낮췄다. 지난 총선 당시 허경영의 국가혁명배당금당이 8억4천만원의 보조금을 탄 것에 대한 보완책이라 주장하지만, 공천 비율을 높이는 노력 대신 기준을 낮추는 쪽으로 짬짜미했다. ‘여성 의원의 효능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면 남성 의원의 효능감은 무엇인지도 되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년 남성이 장악한 국회에서 비동의 강간죄 개정, 낙태죄 헌법불합치 후속 입법, 성별 임금격차 해소 등 성평등 관점의 입법과 예산, 정책은 주요 관심사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그럼에도 여성 할당제를 향한 비난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특정 집단의 독점을 제한하는 방안은 어떤가.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5월 공천 할당제를 비례의석뿐 아니라 지역구 의석에도 의무화하고, 특정 성별이 전체의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국회의장에게 권고했다. 과소 대표된 여성의 ‘할당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과잉 대표된 남성 집단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법에 복종하는 국민이 법의 제정자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근대 민주주의 근본원칙에 따라, 법을 제정하는 이의 절반도 여성이어야 한다는 논리다. 세계적 추세인 ‘남녀 동수제’ 흐름에도 부합한다. 더 나은 민주주의와 대표성 확보를 위해 우리도 논의해볼 때가 됐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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