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사인도 보기 전에 남은 시간이 6초”···KBO의 피치클록은 누구를 위해 도입했나[스경x이슈]

김은진 기자 2024. 3. 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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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 시범 경기에서 6회 초 NC 투수 이준호와 KIA 1번 박찬호가 투타를 준비하는 동안 전광판 아래 설피된 피치 클록이 작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범경기 LG-KT전이 열린 지난 9일 수원 KT위즈파크. 경기가 시작된 뒤 선수단은 어리둥절 했다. 전광판 아래 설치된 피치클록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직전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양 구단에 “외야 피치클록이 현재 안 되는 상황이다. 한 대라도 안 돌아가면 규정 적용이 어려워 고친 뒤 적용한다”고 전해왔다. 4회부터 피치클록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이것도 ‘테스트 기간’이니까 괜찮은 거냐”는 실소가 나왔다.

KBO는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메이저리그를 따라 올해 피치클록을 도입했다. 투수는 피치클록 규정에 따라 주자가 있을 때 23초, 없을 때는 18초 안에 투구해야 하고 타자는 8초가 표기된 시점에 타격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 어기면 투수는 볼, 타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 시범경기부터 적용은 하되 전반기까지는 제재 없이 ‘시범 기간’으로 치러보고 정식 도입 여부를 다시 결정하겠다고 했다. 며칠간의 피치클록 ‘체험’결과 장점보다 부작용이 훨씬 크게 도드라지고 있다.

한 선수는 “투수는 공을 잡는 순간부터 카운트 한다고 해 어떻게 계측하는지 유심히 봤다. 투수가 안타를 맞고 포수 뒤로 백업을 간 경우, 마운드로 돌아오면서 포수한테 공을 받으면 그때부터 진짜 23초가 시작되더라”며 “투구 준비와 아무 상관 없이, 그게 야구를 위한 규칙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른 투수는 “크게 신경 안 쓰고 던졌다. 그런데 파울이 났을 때 공 바꾼 시점부터 시간이 흘러서 포수 사인 보기도 전인데 6초밖에 안 남더라. 최소한 마운드 안에 들어왔을 때 스타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구단의 전력분석 관계자는 “일관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규정대로 제 타이밍에 계측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KBO도 처음 해봐 헷갈리는지 실수가 여러 번 있었다. 이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0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 시범 경기에서 피치 클록이 작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KBO가 일방적으로 룰을 정하고 도입했고, 준비도 미흡한 흔적이 선수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미 이강철 KT 감독과 김태형 롯데 감독 등 베테랑 감독들을 비롯해 사령탑 중에서도 절반은 정규시즌 적용 반대 의견을 내놨다.

요점은 피치클록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준비 부족 상태에서 무리하게 도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또한 제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정규시즌에 적용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팬들이 “5,4,3,2,1”하고 집단으로 카운트를 외치면서 상대 투수를 압박하는 모습이 나왔다. ‘야구의 묘미’라고만 볼 일은 아니다. 투수의 경기력에 ‘외부요인’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정규시즌에도 이를 계속 ‘시범적용’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공정 우려도 있다. 이숭용 SSG 감독도 “시기상조다. 단계별로 시험을 해보고 완전히 준비됐다 싶을 때 도입해야 한다”며 시범경기까지만 시험 적용하자는 이강철 감독 등의 의견에 함께 했다.

마침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류현진(한화)도 “피치컴 없이는 피치클록 적용 어렵다”고 했다. 피치클록의 목적은 경기 시간 단축이다. 이를 위해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 포수 , 내야수가 피치컴이라는 전자장비를 착용해 사인을 교환하도록 한다. 그러나 KBO는 피치컴도 도입하지 못한다. 매우 고가인 데다 메이저리그에서 쓰는 장비를 들여와 사용하려면 전파인증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가 치밀하게 준비하고 장비까지 개발해 도입한 피치클록을 KBO는 무작정 도입부터 하고 현장에서 맞춰주고 따라와주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 10일 사직구장, 롯데-SSG의 시범경기 중 외야 스탠드에 설치된 피치클락. 연합뉴스



야구계의 시선은 허구연 KBO 총재에게로 향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다는 명분으로 급격하게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메이저리그식’으로 바꾸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피치클록 도입을 발표하면서도 “올해 내로 관련규정을 정비하겠다” 외에는 아무 준비 상황이 없었던 KBO는 지난 1월에는 “시범경기부터 전반기까지 시험 적용하고 도입 여부를 다시 논의한다”며 사실상 ‘보류’ 결정을 했다. 준비 없이 도입 발표부터 해놓고 여론을 살핀 뒤 ‘시험적용’ 하고 철회하는 순 아니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올시즌 전반기는 왜 희생되어야 하는냐는 의견이 뒤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피치클록의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하는 선수들의 반발이 매우 높다. 선수들은 피치클록은 물론 ABS, 수비시프트 제한 등 올시즌 많은 규칙이 바뀌는 데 있어 어떤 논의도 사전에 없었다는 데 대해 굉장히 큰 불만을 갖고 있다.

한 선수는 “KBO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선수들의 동의 절차를 거쳤다고 하는데 나를 포함해 많은 선수들이 그런 문자를 받았는지조차 기억도 못한다. 이런 중요한 얘기를 문자 메시지로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규칙 설명회도 결정해놓고 할 게 아니라 미리 해서 그걸 듣고 선수들이 동의하든지 하게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수협은 13일 이사회를 개최한다. 각 구단 이사들이 시범경기를 치러본 선수들의 의견을 모았고 이날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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