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집도, 용지도 어렵지만 투표할게요”···생애 첫 투표 앞둔 발달장애인
“이거 긴장되는데요. 잘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12일 오후 2시40분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5층.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모의투표’라 적힌 현수막 아래 세워진 기표소 앞으로 모의 신분증을 든 발달장애인과 조력자 70여명이 줄지어 섰다. 투표용지 두 장을 받아든 이들 사이에선 긴장한 듯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선관위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투표 절차와 투표 현장을 사전에 체험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모의투표를 시행했다.
줄 가운데 서 있던 발달장애인 김성준씨(22)도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김씨는 4월10일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있다. 그는 2022년 대통령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난달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발달장애인 동료들과 장애인 권리 옹호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참정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표해 보리라’ 다짐한 김씨 앞에 놓인 장벽은 높기만 했다. 기표소를 바라보던 그는 “과연 투표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에서 ‘투표는 어렵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투표를 해본 발달장애인 동료들로부터 ‘투표용지에 이름만 나와 있으니 (후보자가)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라고 했다. 이날 투표 절차 교육을 듣던 문석영씨(32)는 “선거자료집이 우편물로 왔을 때 글씨가 너무 작고 뒤죽박죽이라 알아보기 힘들었다”라고 했다.
실제 투표장에서처럼 신분 확인을 마친 김씨는 투표용지를 발급받아 기표소에 들어갔다. 김씨는 앞서 교육받은 대로 용지를 세로로 접어 투표함에 넣긴 했지만 “기표소 안에서 당황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종이가 너무 길고 글씨가 꽉 차 있는 데다 투표 칸이 좁았다. 손을 떠는 친구라면 투표하기 더 힘들어할 것 같다”라고 했다.
문진희씨(21)는 모의투표와 절차 교육을 마쳤지만 여전히 투표가 막막하다고 했다. 선거구나 후보자 및 공약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문씨는 이날 인터넷으로 선거구와 예비후보들을 찾아보려 했지만, 어디서 무엇을 검색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문씨는 “은평구 갑이나 을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지역구에 대해서도 오늘 처음 들어봤다”라며 “누구를 뽑을지 정할 때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봐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라고 했다.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지난달 20일 서울시 선관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 발간, 그림을 담은 투표용지 제작, 모의투표 상설화, 공적 투표 보조 지원을 요구했다. 이날 진행된 모의투표는 기자회견 당시 김씨가 냈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김씨는 “투표를 통해 발달장애인이 정치인에게 권리를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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