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팔자”... 은행원들 자사주 매도 행렬, 작년보다 100배나 몰린 이유

김은정 기자 2024. 3.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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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소득공제 받으려고 조금씩 사모은 우리사주가 ‘효자’ 노릇 하네요. 400주 정도를 들고 있는데 아내가 이참에 팔자고 성화여서 매도 타이밍 보고 있습니다.”(A은행 부지점장)

“우리사주 매도세만 없어도 금융지주 주가가 훨씬 더 오를걸요.”(B은행 부행장)

‘저PBR(주가순자산비율) 투자 열풍’을 타고 금융지주 주가가 고공 행진하자 은행 직원들의 우리사주 매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에 대한 애정으로, 또는 연간 400만원 소득공제를 받을 목적으로 우리사주를 사들였던 직원들이 입사 이래 처음 보는 높은 주가에 차익 실현에 나서는 것이다. 금융지주 주가는 원래 움직임이 작은 편인데 지난 1월 정부가 ‘기업 밸류업(가치 상승)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꼽히며 주가가 급등했다. KRX은행 지수는 올 들어서만 22% 올랐다.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는 연초 대비 40% 가까이 상승했다.

12일 KB금융은 장중 4% 넘게 오르며 역대 최고가를 새로 썼고, 신한지주도 이날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코스피는 이날 0.8% 오른 2681.81로 거래를 마치며 약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그래픽=박상훈

◇”우리사주 팔려는 직원 밀려 밤샘 야근까지”

금융지주에서 우리사주 인출(매도) 행렬이 쇄도하자 웃지 못할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업계와 KB금융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달 KB금융에선 일간 기준 최고 2200여 명의 우리사주 인출 신청자가 몰렸다고 한다. 작년 평균 대비 100배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사주조합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우리사주를 직원 개인 계좌로 옮기는 절차에만 2주일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사이 주가가 더 올라 직원들은 절차가 늦어진 걸 전화위복으로 여겼다고 한다.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1명 충원했는데도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인출 업무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와중에 팔겠다는 신청자는 밀려 들다보니 지난달 초엔 새벽 3~4시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우리사주를 보관하고 있는 한국증권금융 전산망을 통해 동명이인이나 퇴직자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걸러내야 했던 이유도 컸다.

이 조합 관계자는 “우리사주 매도세가 워낙 거세다보니 우리사주조합이 가진 4대 주주 위치가 아슬아슬할 지경”이라고 했다. 외국인 주주들은 저PBR 수혜를 기대하고 금융지주 주식을 더 사들이는 반면에 우리사주는 매도가 잇따르고 있어 순위 역전 우려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일본 선례…추가 상승 여력 기대감도

금융지주의 ‘큰손’들도 차익 실현에 나서긴 마찬가지다.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이 최근 KB금융 지분 1.2%(약 3200억원 규모)를 정리했고, 어피니티도 신한지주 지분 절반가량을 팔아 약 4500억원을 손에 쥐었다. 저PBR 개선 기대감이 선반영되며 주가가 급등하자 투자금 회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금융지주 주식에 대한 기대감을 접기엔 이르다는 말들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에서도 도쿄증권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 추진 이후 은행주들이 급등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도쿄거래소가 작년 3월 상장사들에게 저PBR 개선을 요구한 이후 은행주 주가가 약 50% 추가 상승했다”며 “특히 일본 리딩뱅크인 미쓰비시UFJ의 경우 PBR이 작년 3월 0.6배에서 지난달 0.91배까지 올랐다”고 했다.

실제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정부의 주주환원 확대 기조에 발맞추고 있다. KB금융이 올해 3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혔고 하나금융지주(3000억원)와 신한지주(1500억원), 우리금융지주(1380억원) 등도 동참하며 주가 저평가 해소에 나섰다. 특히 기존 ‘큰손’들이 아닌 외국인들은 금융지주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KB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올해 초 72.02%에서 75.27%로 늘었고, 같은 기간 우리금융지주가 2.67%포인트, 하나금융지주 1.64%포인트, 신한지주 1%포인트 등으로 외국인 비중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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