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재집권하나...美주재 외교관들 최대 미션은 ‘트럼프 헤지’
바이든 행정부는 심기 불편 “현직 행정부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지지율이 급락할까요?” “‘제3지대 후보’는 바이든·트럼프 중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요.” “오늘 대선을 치른다면 누가 당선될까요.”
11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의 한 대형 로펌 사무실에 모인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잇따라 손을 들고 연단에 앉은 선거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미 전직연방의원협회(FMC)가 민주·공화 양당의 베테랑 선거 전략가 3명을 초청해 진행한 ‘미 대선 전망’ 간담회엔 독일·덴마크·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총 10국에서 온 미국 주재 외교관들과 각국 경제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민주·공화 지지자 투표 성향 등을 주제로 열렸지만, 참석자들의 관심은 온통 ‘트럼프의 복귀’ 여부에 집중됐다.
미 수도 워싱턴 DC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관들이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대선의 향방을 주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에선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선거 결과를 가늠하려는 해외 공관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1월 대선을 8개월 앞두고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민주당 소속 바이든과 맞붙는 재대결 구도가 사실상 확정되자 각국 외교관들은 ‘트럼프 재집권’이 자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느라 앞다퉈 동분서주하고 있다. 미 매체 더컨버세이션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자 트럼프는 아직 백악관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도 해외 국가들의 정치 의제들을 좌우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유럽 출신 외교관들은 ‘불안감’을 드러냈다. 재임 당시 미국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탈퇴시키겠다고 했던 트럼프는 지난달엔 나토 동맹국들을 상대로 충분한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공격을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다시 한번 파문을 일으켰다. 한 유럽 국가 외교관은 “매일 미 선거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며 “트럼프의 복귀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순위”라고 했다. 다른 국가 소속 외교관은 “(현장을 가보니) 트럼프 지지자들의 열기가 보통이 아니더라”며 “(바이든에 비해) 트럼프의 실제 득표율이 훨씬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일부 국가들은 트럼프 측근들에게 미리 접근하는 ‘장외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이를 두고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 헤지(hedge·위험 회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자국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미리 설명하고 설득해 ‘트럼프 재집권’의 위험을 분산하겠다는 의도다. 유럽의 ‘큰 형님’ 독일은 올라프 숄츠 총리의 핵심 참모들을 워싱턴으로 정기적으로 보내 트럼프 인사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 장관은 지난해 9월 공화당 텃밭인 미 텍사스주 등을 찾아 “독일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아시아에서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건 일본이다. 로이터는 최근 일본 관리들이 트럼프 측근들을 접촉해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중국과 안보 및 통상 등과 관련한 거래를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스트롱맨(철권 통치자)’을 선호하는 트럼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역·안보 협정을 추진할 경우 대만 등 역내 지역에서의 미국의 방어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미리 막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해외 국가들이 트럼프 측을 공개적으로 접촉하는 움직임을 바이든 행정부가 경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현직 행정부를 ‘패싱’ 하고 트럼프에 줄을 서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다”며 “(특정 국가들엔) 간접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근 방미한 친러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바이든 행정부 인사는 한 명도 만나지 않고 지난 8일 트럼프와 회동하자 바이든은 선거 유세에서 “오르반은 독재를 추구한다”며 비판했다. 한국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로 키’를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비공식적으론 트럼프 측에 “어느 행정부가 들어서든 한미 동맹 관계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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