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존중하면, 기자와 취재원도 존중 받겠죠"
“답답하고 허탈한 마음에 토로했습니다. 그런데도 투정 부리지 않겠습니다. 제보자 그들이 낸 용기에는 비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제55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서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청부 민원’ 의혹>을 보도한 이재욱 MBC 기자가 말한 수상소감이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보도를 문제 삼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이 기자는 이번 정부에서 정권과 관련한 고발과 수사에 4차례 휘말렸다. 이재욱 기자는 진영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기사에 드러낸 사실을 바탕으로 언론이 존중받길 희망했다. 8일 서울시 상암동 MBC 사옥에서 이 기자를 만났다.
이 기자는 2020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된 채널A의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했다. 이 일은 이듬해 ‘고발사주’ 사건의 발단이 됐다.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넘긴 고발장에는 야권 인사들과 채널A 사건을 보도한 MBC 기자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발장이 제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혹을 알린 조성은씨가 김 의원과 통화한 녹음파일에 ‘윤석열’ 이름이 나온다고 MBC가 보도하자 국민의힘으로부터 고발이 들어왔다.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허위보도를 했다는 혐의였다. 허위라고 주장한 근거는 없었다.
“보도가 사실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했지만 정작 그들이야말로 사실이 뭔지 모른 채 고발했거든요. 그저 유불리에 따랐던 것 같아요.” 이재욱 기자의 보도 다음 날 CBS노컷뉴스는 녹취록에 ‘윤석열’ 언급은 없었다는 단독기사를 내보냈다. 보름 뒤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노컷뉴스는 사과했고 이 기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음해인 2022년에는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한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MBC 기자들이 검찰의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에 입건됐다. 지난해 이 기자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도 보도했다.
“강제수사가 들어오지 않을까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지금껏 그렇게 형편없는 보도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회의감도 들죠.”
서울경찰청은 1월15일 민원인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서울 양천구 방심위 사무실을 6시간 동안 압수수색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넘겨주고 받은 사람 모두 처벌한다. 방심위는 수사의뢰 대상에 기자들을 포함했는지 기자협회보 질의에 답을 피했다.
이 기자는 정치권처럼 갈라진 기자사회에도 안타까움을 느꼈다. “채널A 사건 보도를 폄하하고 기자상 반납하라고 일부 기자들이 공격도 했어요. 객관적인 진술과 증거를 바탕으로 한 보도가 최선의 결과물이지 언론이 최종심급은 아니잖아요.”
채널A 기자는 강요 미수 혐의를 받았지만 2021년 7월 무죄가 선고됐다. 검언유착은 실체가 없었다거나 적어도 재판부가 취재윤리 위반은 인정했다며 언론계 반응이 나뉘었다.
“‘당신의 의견은 동의하지 않지만 억압에는 함께 싸우겠다’는 격언이 있잖아요. 기자들이 언론사 논조에 따라 친소관계가 갈리기도 하는데 언론인이라면 문제의식을 같이하고 연대하면 좋겠어요.”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문화일보 기자를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일에 대해서도 이 기자는 “결국 무혐의 처분될 것”이라며 비판했다. 문화일보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부인의 ‘비서’를 4·10 총선에 공천했다고 4일 보도했다. 민주당은 후보가 지난 대선 당시 선대위의 배우자실 부실장을 잠깐 맡았을 뿐 비서는 아니라고 반발했다.
이 기자는 2013년 한겨레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2016년에는 ‘구의역 김군’의 가방 속 기름때 묻은 공구와 뒤섞여 있던 컵라면을 보도했다. 이듬해 일을 그만뒀다. 비판보도로 누군가는 꼭 불행하고 곤란해지는 일이 불편하고 당혹스러웠다. 애초 꿈이었던 정치학자가 되고 싶었다. 정치학 연구는 모두를 고루 행복하고 존중받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기자는 순전히 밥벌이 때문에 1년 만에 복귀했다. 아내는 이 일에 능력을 보이는 그를 지지해 줬다. “기자에게 사사로운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그 고민이 지금도 해결된 건 아니에요.” 이 기자는 누군가의 비위와 그의 인격을 분리한다.
“류희림 위원장도 비위 행위에 대해 비판받을 수 있지만 제 기사로 그 사람 자체가 평가받지 않으면 좋겠어요. 어느 취재원이든 누군가에게 좋은 가족이고 동료인데 보도는 다양한 인간적 면모에서 아주 일부만 보여주잖아요.” 그는 기사가 기사로서 존중받으면 기자와 취재원도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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