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의 원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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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결국 PBR이 1보다 낮은 기업에 주주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자아 비판'을, 향후 어떻게 개선할지 '반성문 쓰기'를, 그리고 실천 후 주주들에게 '검사 받기'를 강요하는 셈이다.
비록 처벌 규정은 없다지만 PBR이 1보다 낮은 기업이 가령 유상증자를 할 수 있을까.
반면 우리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기업에 책무를 부과하기보다 참여 유인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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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세련된 이름에서부터 내실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더욱이 원조 격인 일본의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하는 경영의 실현을 위한 대응'이라는 이름과 비교하면, 이름에서부터 우리 금융당국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원조에 대해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달리 그보다 확장된 우리나라 제도를 두고서는 시장 반응이 너무도 냉랭했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을까.
일본 제도는 주주를 의식하는 경영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상황 분석→개선 계획 수립→계획 실행 및 주주와의 소통 과정을 매년 1회 이상 공개적으로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작년 3월 도입 당시에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에, 자기자본이익률(ROE)이 8%에 미달하는 기업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음을 제도 도입 배경으로 밝혔고, 예시를 들면서 특히 PBR은 1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기준을 강조했다. 이후 작년 10월 중간 평가에서는 PBR이 1보다 낮았던 기업들에서 상당한 개선 효과를 보인 반면, 원래 PBR이 1보다 높았던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PBR은 1주당 장부상 청산가치 대비 주가를 의미한다. 즉 1주당 청산가치가 1만원이고 주가가 7000원이면 PBR은 0.7이다. 이때 청산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이다.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주총에서 현금 청산을 결의하면 7000원짜리 주식 대신 현금 1만원을 받는다. 일반주주는 이러한 현금 청산에 찬성하겠지만, 주당 1만원 이상의 사적가치를 누리는 지배주주라면 현금 청산에 반대할 것이다. 일본 제도가 PBR에 주목하는 것은 PBR이 1보다도 낮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가 의심된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 금융당국은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주주들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앞서 언급한 과정을 주기적으로 반복할 책무를 부과했다. 결국 PBR이 1보다 낮은 기업에 주주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자아 비판'을, 향후 어떻게 개선할지 '반성문 쓰기'를, 그리고 실천 후 주주들에게 '검사 받기'를 강요하는 셈이다. 그래서 제도 명칭이 '자본(기회) 비용과 주가를 의식하는 경영의 실현을 위한 대응'이다.
비록 처벌 규정은 없다지만 PBR이 1보다 낮은 기업이 가령 유상증자를 할 수 있을까. 또 인재 유치를 이유로 경영진의 성과보수를 높일 수 있을까. 실제로 일본 금융당국은 주주 눈높이에 맞는 자본 조달 및 투자 방식을 정할 것, 경영진의 성과보수 잣대로 PBR을 도입할 것 등을 개선 계획의 예시로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예시가 없더라도 경영 원칙으로 자리 잡은 이상 그것을 충족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경영 판단에 기준으로 작용하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일본 제도의 핵심은 금융시장에서 주주에게 보장해야 하는 최저 가치의 기준을 정한 것이다. 이는 향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기준을 강화하거나 처벌 규정을 신설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반면 우리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기업에 책무를 부과하기보다 참여 유인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뒀다. 마치 최저임금 이상을 지불하는 기업을 포상하겠다는 것과 흡사한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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