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맡긴 의료의 배신…윤 정부의 선택은?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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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역설했다.
윤 대통령이 짚은 비정상은, 정부가 오래도록 방치한 현실이다.
2024년 의-정 갈등은 정부가 오래도록 방치한 비정상적 의료 체계의 민낯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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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 인구·복지팀장
“의료 현장 혼란이 역설적으로 의사 수 부족을 입증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이탈했다고 국가적인 비상의료 체계를 가동해야 하는 이 현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역설했다. 윤 대통령이 짚은 비정상은, 정부가 오래도록 방치한 현실이다. 시장 논리에 따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각 병원은 전문의 대신 저임금으로 주 80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에게 의존해왔다.
비정상적 현실은, 전공의들의 힘을 ‘비정상적’으로 강화했다. 전체 전공의 1만3천여명 가운데 2740여명(약 21%)이 서울 대형병원 ‘빅5’(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에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 2천명 확대 백지화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서며 파급력이 큰 ‘빅5’ 전공의 전원 사직을 예고했다.
이미 4년 전 조짐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던 의대 400명 정원 확대(10년 유지해 의사 4천명 추가 양성)와 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막아선 구심점도 전공의였다. 당시 전공의 70~80%가 2주 넘게 집단휴진을 이어갔다. 젊은 의사들을 앞세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여당으로부터 ‘코로나 안정 때까지 의대 증원·공공의대 원점 재검토’(9·4 의정합의)를 약속받았다.
2020년 의-정 갈등은 일단락됐으나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코로나 감염 불안이 큰 상황임에도 정부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나가버린 의사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와 불신이 자라났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올린,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를 선택하고 싶냐는 게시물 문구에서 드러난 특권 의식은, 학창 시절 성적 경쟁에서 승리한 학생을 의사로 양성하는 현실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다시 4년이 지난 지금,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기대하며 의사가 되려는 열망은 더 뜨겁다. 반면 의료취약지·기피과목 의사 부족 문제는 한층 심각해졌다. 코로나가 드러낸 공공의료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흔적도 찾기 어렵다. 의사 역시 농어촌보단 도시, 비수도권보단 수도권, 덜 힘들거나 더 많이 벌 수 있는 분야로 쏠린다. 의료서비스 핵심 자원인 의사 분배를 시장에만 맡겼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정책의 출발점으로 의대 정원 확대에 나섰다. 급물살을 탄 건 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9일 직접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를 공식화하면서부터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지 8일 만이었다. 총선을 두달여 앞둔 2월6일, 내년부터 연 3058명이던 전국 40곳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려 5058명을 선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정부의 정치적 노림수를 시민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불과 2주 뒤 수술실과 응급실마저 비운 전공의들에 대한 분노, 27년간 정원이 늘지 않았단 사실, 의대를 향한 열망이 두루 착종된 여론은 정부 쪽으로 쏠렸다.
2024년 의-정 갈등은 정부가 오래도록 방치한 비정상적 의료 체계의 민낯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전공의 의존 구조뿐만이 아니다. 거주지역·중증도와 무관하게 환자와 의료진이 서울 ‘빅5’로 쏠렸다. 뒤늦게 정부는 전공의가 이탈한 대형병원이 중증·응급환자 치료만 집중하게 하고, 전문의 중심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돈이 드는 일이다. 동네 의원(1차)→종합병원(2차)→상급종합병원(3차) 등 기능별로 환자를 나눠 맡아 의료비 지출을 효율화하면서도 건강을 지키는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는 일도 급선무다. 적극적 정책 개입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줄곧 자유시장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이 역설을 과연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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