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만 명’ 신용 대사면 시작…2금융권, 달갑지 않은 이유는

정윤성 기자 2024. 3. 1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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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만 명 신용점수 평균 37점 상승…8만 명, 1금융권 대출 가능
신용 회복한 중저신용 고객, 저축은행 이탈 가능성 커져
취약차주 몰려 건전성 악화 우려도…연체율은 전년比 2.4%p 증가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12일부터 2000만원 이하 연체자 가운데 전액 상환을 마친 이들의 연체이력정보 공유와 활용이 제한되는 '신용사면'이 시행됐다. 역대 신용사면 중 가장 큰 규모다. 이에 신용이 낮은 차주가 '우량 차주'에 해당하는 2금융권에선 신용점수가 올라간 이들이 은행권으로 이탈할 경우 고객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2금융권 건전성 위험도 높아지는 터라 부실 차주의 신용도가 상승하면 리스크까지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속 신용회복지원 시행 행사에 참석해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 대출 어렵다"…최대 329만 명 신용점수 회복

1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날부터 소액 연체자 연체기록이 삭제되는 '서민·소상공인에 대한 신속 신용회복 지원'이 실시됐다. 신용회복 대상은 2021년 9월1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2000만원 이하의 연체가 발생했지만, 오는 5월31일까지 이를 전액 상환한 차주다.

이번 지원으로 개인 264만여 명, 개인사업자 17만5000여 명의 연체기록이 이날 즉시 삭제된다. 금융당국은 신용회복 대상 차주가 개인 298만 명, 개인사업자 31만 명까지 각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개인 신용회복 대상자 264만 명의 신용점수는 평균 37점 상승(659점→696점) 상승했다. 이 가운데 15만여 명은 신용카드를 신규 발급 받을 수 있고, 26만여 명은 신규 대출이 가능해졌다. 또 한국평가데이터는 신용회복을 받은 개인사업자의 신용점수가 평균 102점(623점→725점) 상승해 7만9000여 명이 1금융권 대출 대상자가 된다고 밝혔다.

5대 저축은행(OK, 웰컴, 한국, SBI, 페퍼)의 지난해 3분기 거래 고객은 총383만6088명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2금융권 불황인데…고객 더 뺏길까 우려

연체자가 원활한 금융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지만, 발표 초기부터 형평성 문제와 도덕적 해이 등 우려의 시선이 이어졌다. 특히 저축은행을 비롯해 중저신용자들이 주 고객인 2금융권에서 고심이 깊은 분위기다. 저축은행에서 신용을 회복한 고객들이 1금융권으로 이탈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저축은행은 그간 저축은행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수신금리를 인상하고 고금리 특판상품을 판매해 왔다. 하지만 이자 비용의 증가로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업계 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만 커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이 긴축 경영 전략을 택하면서 지난해 3분기 여수신 잔액도 각각 전년 대비 10조원 가량 줄었다.

저축은행을 찾는 고객 발길도 점차 줄고 있다. 5대 저축은행(OK, 웰컴, 한국, SBI, 페퍼)의 지난해 3분기 거래 고객은 총383만6088명으로 전년 대비 3.01% 늘었지만, 전 분기과 비교하면 1.68% 증가에 그쳤다. 전년 같은 기간 5.85%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둔화된 셈이다. 또한 온라인 대환대출 서비스가 활성화 되면서 2금융권 차주가 은행권으로 대출을 갈아탄 비율도 지난해 6월초 9.3%에서 지난해 말 22.5%로 높아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량 차주'로 볼 수 있는 중저신용 고객의 이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은 저축은행 입장에서 달갑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번 신용회복으로 고객이 얼마나 이탈할지 추정되진 않지만, 고객을 빼앗길 요인이 늘어난 것은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국내 79곳 저축은행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연체율은 6.1%를 기록했다. ⓒ 연합뉴스

취약차주 몰리면 연체율 빨간불…신용관리 어려워

건전성 문제도 거론된다. 이번 신용회복으로 신규 대출이 가능해진 취약차주가 저축은행으로 몰릴 경우 연체율 등 리스크 관리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지난 1월 기준 은행권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평균 신용점수가 890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신규대출이 가능해진 신용회복 대상자 대부분이 저축은행으로 몰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저축은행의 연체율 상황은 눈에 띄게 악화하고 있다. 국내 79곳 저축은행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연체율은 6.1%로 1년 전(3.7%)보다 2.4%포인트 가량 올랐다. 총자산 상위 저축은행 6곳(SBI·OK·한국·웰컴·애큐온·페퍼)의 연체율도 지난해 3분기 5.9%를 기록하며 1년 전(2.8%)보다 3.1%포인트 증가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대상이 전액 상환한 차주다 보니 신용이 회복된 신규 고객이 유입된다고 해서 건전성에 큰 무리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지난해부터 연체율 관리에 매진하고 있는 만큼 신용회복 요인도 의식해 신용평가나 대출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당장 건전성에 타격이 적다해도, 연체이력이 지워지는 탓에 앞으로 차주의 상환 능력과 리스크 파악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신용관리가 어려워진 저축은행이 전체 대출 문턱을 높이면 그 피해가 서민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대규모로 신용점수가 회복되면 신용체계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지원 방식"이라며 "2금융권뿐만 아니라 금융권 전반에서 차주의 상환 능력을 파악하기 까다로워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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