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피의자 출국에 증거 부족, 수장 공백까지···첩첩산중 ‘채 상병 사건’ 수사

이보라·강연주 기자 2024. 3. 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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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현 주호주대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놓고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현 주호주대사)은 출국금지가 풀려 출국한 데다 증거 부족에 이어 공수처장 공백까지 장기화되면서다. 시민단체는 채 상병 사건 규명을 위해선 정부가 이 전 장관에 대한 주호주대사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이 전 장관과 관련해 “수사팀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조사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며 “추가 소환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은 확고하다”라고 밝혔다. ‘이 전 장관에 대한 추가 조사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 수사단 수사 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혐의(직권남용)로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이 전 장관은 최근 주호주대사로 임명됐고 법무부가 출국금지를 해제하면서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공수처가 수사 의지를 재차 드러냈지만 핵심 피의자이자 사건의 ‘윗선’으로 지목된 이 전 장관의 출국으로 힘이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공수처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 사실을 접하고 뒤늦게 소환조사를 했지만 ‘4시간 약식조사’에 그쳤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이 전 장관이 출국하기 전 혐의를 파악할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가 지난 1월 국방부 등 압수수색 당시 이 전 장관 자택은 압수수색하지 않은 점, 약식조사에서 그에게서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았지만 장관 퇴임 이후 바꾼 것이라는 점 등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 커졌다. 이 전 장관 측에 따르면 그는 장관 재직 당시 별도의 업무수첩은 만들지 않았지만 업무 기록이 돼 있던 메모 일부는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형식적인 임의제출이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의 근거가 된 반면 추가 증거 확보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수처장 공백이 길어지는 것도 수사를 더디게 만드는 요소이다.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임기를 마친 뒤 공수처장 자리는 2개월 가까이 비어 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후보 2명을 추천했지만 윤 대통령은 2주 가까이 최종 후보를 지명하지 않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 절차 등을 감안하면 빨라도 4월 총선이 끝난 뒤에야 새 처장이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에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낸 성명에서 “수사가 개시된 사람을 한 나라의 대사로 지명하는 것은 국격과 위신을 실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공수처 수사에 차질을 일으키고 사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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