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정부, 의대 교수들 중재안 거절…출구 없는 의·정 갈등 (종합)
의대 교수들 중재 노력에도 대화 교착
교수 집단사직 우려엔 "각종 명령 검토"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의과대학 증원을 추진하는 정부가 집단사직 배수진을 친 의대 교수들이 제안한 중재안을 거절하면서 사태 해결이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 대화 통한 해결 촉구…동시에 집단사직도 예고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에 의대 증원 1년 유예 및 대화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 여야 정치권, 국민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보건기구(WHO)의 면밀한 검토를 거치고 1년 뒤 증원을 확정하는 방안도 내놨다.
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정부가 의사 증원 규모를 무조건 2000명으로 확정하지 말고 증원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대화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라며 "의협도 전면 재검토만 주장하지 말고 대화 협의체 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대표들은 정부에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이날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대표 등을 대리해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의대 증원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5일에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를 대리해 같은 취지의 소송을 냈다.
교육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에게 방송사 생중계로 공개토론할 것도 제의했다. 이 변호사는 "교육부 장관이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한 것과 복지부 장관이 의대 2000명 증원을 결정하고 교육부에 통보한 것을 주제로 불법인지 아닌지 공개토론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정부에서 공개토론을 하겠다는 답변이 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며 "토론에는 저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SNS에 "대정부 토론회를 제안한 적 없다"고 했다.
의대 교수들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는 동시에 집단사직도 예고했다.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전날 오후 임시총회를 열고 정부가 사태 해결에 진정성 있는 합리적인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을 경우 18일을 기점으로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결했다. 서울아산병원과 울산대, 강릉아산병원 교수들로 구성된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도 지난 7일 긴급총회를 열고 자발적인 사직서 제출에 합의했다.
전의교협은 이날 성명을 내고 "환자를 보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면 전공의와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교수의 사명"이라며 "전공의와 학생이 중대한 피해를 입고 교육 현장이 붕괴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교수로서의 사명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이어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이는 향후 우리나라 보건의료와 의대 교육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며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집단행동 여부를 논의하는 의대 교수들은 늘어나는 추세다. 연세의대 교수협은 전날 투표를 통해 안석균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성균관의대 교수협도 이날 오후 온라인 회의를 개최하며, 가톨릭의대 교수협 역시 오는 14일 회의를 열고 집단행동 여부 등을 논의한다.
서울의대를 비롯해 비대위가 구성된 전국 14개 의대들은 이날 오후 동영상 회의를 통해 향후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방 비대위원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전국 의과대학 중 총 14개 대학에 비대위가 구성돼 있고, 오늘 저녁에 저희들이 줌 회의를 통해서 향후 플랜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할 것"이라면서 "단체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직을 같이 결의할 분들은 결의하고 반대하는 분들은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 의대 증원 1년 유예 중재안 거절…교수 사직 시 진료유지명령 검토
정부는 이날도 의대 2000명 증원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보건복지부는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가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 중재안을 거절했다. 복지부는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은 더 늦추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특히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를 고려할 때 증원 시기를 1년 늦추면 그 피해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부족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생각할 때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공개토론 제안도 일축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법정에서 다퉈야 할 내용을 국민들 앞에서 토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변호사니까 법정에서 열심히 하시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날 전공의와 비공개 만남을 가졌으나 누구와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함구했다. 앞으로 대화와 설득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만 했다.
정부는 의대 교수들의 사직 등 집단행동 확산을 막기 위해 진료유지명령을 내리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처럼 행정처분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 장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서울의대 교수 전원이 사직하겠다는 결정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교수들도 기본적으로 의료인이기 때문에 의료현장을 떠나면 의료법에 근거한 각종 명령이 가능하다"며 "지금 한다, 안 한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어 "또 다른 집단사직으로 환자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로서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교수 사회의 살아 있는 양심을 믿는다. 집단사직 의사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이날도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했다. 조 장관은 "전날까지 총 5556명에 대해 사전통지서를 송부했다"며 "잘못된 행동에 상응한 책임을 묻겠다는 정부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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