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에 생수를 콸콸콸... 중국 ‘생수왕’은 왜 친일 역적이 됐나

조성호 기자 2024. 3. 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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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민 생수’라는 눙푸산취안(農夫山泉)의 창업자이자 3년째 중국 최고 부호 1위를 지키고 있는 중산산(70·鐘睒睒) 회장이 자국에서 ‘역적’ 취급을 받고 있다.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 디자인이 일본 그림이나 건축물을 차용했다는 친(親)일본 기업설에 이어, 아들 중수쯔(鐘墅子)가 미국 국적으로 산다는 의혹까지 번지면서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상황이다. 이런 의혹의 상당수는 근거가 없는데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퍼지며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지고 있다.

중국 한 상점에서 눙푸산취안 제품용 냉장고를 철거하고 있는 모습./웨이보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의 소셜미디어엔 농푸산취안의 제품을 변기나 싱크대에 버리는 영상을 올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급기야 장쑤성의 몇몇 상점은 농푸산취안 제품을 팔지 않겠다며 이 기업 로고가 붙은 냉장고를 치우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현재 소셜미디어에는 무더기로 버린 농푸산취안 생수의 공병(空甁) 사진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길에 버려진 눙푸산취안 생수의 공병./웨이보

농푸산취안이 갑자기 불매운동 대상이 된 것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이 기업이 친일 기업이라는 주장이 갑자기 확산됐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이 이 회사가 판매 중인 제품의 용기 포장 디자인이 일본 건축물을 닮았다고 주장하자 관련 의혹이 연달아 나온 것이다. 심지어 대표 제품인 생수병의 빨간색 뚜껑이 일본 일장기 색깔을 차용한 것이고, 포장지의 산도 후지산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눙푸산취안이 친일 기업이라며 네티즌이 제시한 근거. 병뚜껑이 욱일기의 색과 같고 포장에 그려진 산이 후지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웨이보

평소 ‘은둔의 기업가’로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려 온 중 회장이 직접 나서 이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비난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영향으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눙푸산취안 주가는 이달 들어 6%가량 하락했다. 시가총액 기준 300억홍콩달러(약 5조원)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매출도 90% 이상 감소했다.

눙푸산취안의 제품이 일본의 건축물과 그림에서 디자인을 차용했다며 네티즌이 제시한 근거./웨이보

공교롭게도 중 회장에 대한 공격은 경쟁사인 와하하그룹의 쭝칭허우(宗慶後) 회장이 지난달 세상을 뜬 이후 시작됐다. 중산산은 1990년대 쭝 회장 밑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쭝 회장이 사망하자 “중산산의 성공은 은인 격인 쭝칭허우를 배신한 덕”이라는 여론이 확산한 것이다. ‘생수왕’이라던 중산산은 ‘배신자’로 찍혔다가 어느 순간 친일 매국노로 매도당하고 있다.

억측이 이어지자 중국 내에서도 자중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우더원 원저우 중소기업협회장은 SCMP에 “가장 무서운 것은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앞서가는 사람과 기업을 공격하는 일”이라며 “냉정을 찾자. 여론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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