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역대 최고 수준의 의료 공백까지 우려…어떤 모델이 더 나을까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4. 3. 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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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조동찬] 의료 파국 해결 모델에 대한 고민


'레이건 모델'이 정답일까요?

1981년 2월,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임기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레이건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해 8월 3일 연방공무원 신분인 관제사들이 근무 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항공이 절대적인 교통 수단이었던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큰 타격이었는데, 파업을 시작하자마자 당일 항공이 7천여 편이나 결항됐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업무복귀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파업 관제사들이 48시간 내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병원을 사직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의사 면허를 정지시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레이건 모델'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사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여러 언론의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용산에서 전공의들의 처리 방법을 두고 '레이건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다시 1981년으로 돌아가 보면, 레이건의 명령을 따른 건 1만 3천여 명의 파업 관제사 중 1천 6백여 명뿐이었습니다. 레이건은 이틀 후 1만 1천3백여 명의 관제사들을 해고했고, 해고된 이들이 향후 어떠한 공직에도 취업할 수 없도록 연방 소속 관제사 취업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그 후 연방지방법원은 노조에 하루 1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관제사 노조는 그해 10월 결국 해산됐습니다. 이 사례는 국민의 피해를 주는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의 모델로 기록되고 있지만, 미국의 항공이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다고 하니 그 피해가 적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월 1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


보건복지부가 서면 점검을 통해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 2,225명의 근무 현황을 점검한 결과, 지난 6일 기준 1만 1,219명(91.8%)이 사직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업무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 5,556명에는 면허 정지 처분 사전 통지를 발송했다며(12일 기준) 잘못된 행동에는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1만 1천여 명의 의사 면허가 정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국에서 적용될 레이건 모델은 미국의 오리지널 상황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당시 항공국은 3천여 명의 관제사 출신 관제 감독관과 파업 불참자 2천여 명, 군 관제사 9백여 명을 각 공항 관제탑에 배치해서 파업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병원을 떠난 1만 1천여 전공의를 대신해 정부가 투입한 건(11일 기준) 군의관과 공보의 총 158명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울아산병원의 모교인 울산의대와 부산대, 전북대에 이어 서울의대 교수들도 전공의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집단 사직을 결의하겠다고 해 역대 최고 수준의 의료 공백까지 각오해야 할 판입니다.

여러 기사를 보면 레이건 모델 적용은 용산의 결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국민에게 다시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0년 후 1만 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면서 당장 1명의 의사를 없애냐?는 신문 사설의 문장 때문이 아닙니다. 레이건 모델은 국민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더럼 마을 모델'은 어떨까요?

정부는 의대 증원 숫자 2천 명은 최소한의 숫자라고 하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음모론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울의대 전체 교수 1,475명 가운데 1,146명(77.7%)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는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이 과학적·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각 대학 총장 및 본부로부터 의대 정원 증원 신청을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2025년도에 당장 늘릴 수 있는 규모가 2천 명을 월등히 상회한다고 한 것이 또한 적절한 근거에 기초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응답자의 95%가 '과학적·합리적·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증원 규모가 결정된다면 증원 논의가 가능하다'는 데 동의했다는 겁니다.

아직 의료계와 정부의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다면 저는 미국의 '더럼 마을(Durham, North Carolina) 모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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