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받았다"는 IQ 47 살인범…모텔 사장은 "지적장애 아닐 수도"
"살인교사 혐의를 부인합니다.…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없습니다."
"조OO 무죄 주장을 믿지 마시고 다 밝혀줬으면 합니다."
12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313호 법정. 제15형사부(부장판사 양환승)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80대 건물주 살해 사건과 관련해 공판 2건을 연달아 진행했다. 앞선 재판은 살인교사 등 혐의를 받는 모텔 사장 조모씨(45)의 2차 공판. 조씨는 건물관리인 김모씨(33)를 시켜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뒤이은 재판의 피고인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씨였다. 김씨는 공판에서 조씨의 지시를 받아 살해했다고 맞섰다.
김씨는 하늘색 미결수복을 입은 채 마스크를 쓰고 어색한 걸음으로 피고인석에 들어섰다. 발언할 때는 일어서 양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재판 내내 불안한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은 있지만 중증 지적장애인인 김씨가 단독으로 살해한 게 아니라 바로 직전 피고인인 조씨에게 교사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김씨에게 '신뢰 관계인이 있냐'고 묻자 김씨는 "있다. 하지만 변호사와 다 함께 출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판부가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 계획을 묻자 김씨는 갑자기 끼어들어 "최대한 빨리 서둘러 주길 부탁한다. 빨리 출석하고 최대한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 부장판사가 "이 사건은 빨리 끝날 것 같은데 조씨 재판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하자 판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씨는 "조OO 무죄주장에 대해 검사 측이 증거파일을 다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유파일도 다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조00의 무죄 주장을 믿지 마시고 다 밝혀줬으면 한다"고 했다.
김씨 변호인은 다음 공판부터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소속 활동가가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석할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허가했다.
재판이 끝난 뒤 김씨 변호인은 "김씨는 IQ가 47 정도로 자신의 상상을 직접 겪은 일처럼 말하고 있다"며 "예를 들면 살인교사범 조씨가 피해자가 김씨 여자친구를 성폭행했다고 말해서 김씨가 매우 화났는데 김씨는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이어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재판과정에서 진술할 때 안정을 얻기 위해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소속 활동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했다.
앞선 공판에서 조씨는 변호사 5명과 출석했다. 조씨는 최소 2곳의 법무법인 변호사 6명을 선임해 조력을 받고 있다. 법정에 들어선 조씨는 피고인석에 바른 자세로 앉아 경청했다. 손에 연필을 쥐고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 판사의 말을 듣고 메모하기도 했다.
조씨 변호인은 살인교사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동기나 살해함으로써 얻을 이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없다"며 "증거 자료에 의하면 피고인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김씨 반감을 누그러뜨리려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씨 변호인은 김씨의 지적 장애가 알려진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조씨 측은 "김씨가 2급 지적 장애라고 돼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의사들 의견도 있다"며 "전문 심의위원이 참여해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또 CCTV(폐쇄회로TV) 등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위법 수집됐다고 주장했다. 조씨 측 변호인은 "수사 기관이 이것을 주지 않으면 유치장에 가둬놓을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 강제적으로 취득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조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살인교사 외에도 근로기준법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준사기 등이다. 검찰은 조씨가 지적 장애가 있는 김씨에게 3년간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숙박비 명목으로 수급비를 가로챘다고 봤다. 조씨측 변호인은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하거나 혐의 검토 후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김씨 변호인 중 한 명은 이날 재판 후 기자와 만나 "기본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다른 변호사들과 협의해야 답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씨가 자신이 추진하는 재개발 보상 방식 등에 사망한 건물주 A씨가 비우호적인 의견을 표한 것에 분노했다고 봤다. 이에 경제적 이권을 위해 김씨를 시켜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오전 10시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건물주 A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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