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고백하고 '얼평'도 하는 페미니스트..."살아남기 위해 체제를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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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거라고. 세상은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인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그저 쓰다 버릴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여성의 임신 선택권을 지지하는 그는 "내가 겪은 임신 중지가 쉬웠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라면서도 "그 수술이 나를 살렸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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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에서
실패담 통해 온전한 나로 사는 법 이야기
“나는 내가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거라고. 세상은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인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그저 쓰다 버릴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멕시코계 미국인 시인이자 2022년 전미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소설가 에리카 산체스의 에세이집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공감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동아시아 대륙 가장자리에 위치한 나라, 한국의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구축되지도 않은” 백인 남성 중심의 주류사회에서 마이너리티라는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유사성 때문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갈등하는 멕시코계 이민자 딸의 좌충우돌을 에세이로 펴낸 산체스는 한국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에 나와 같은 여성이 수백만 명이나 사는데도 이런 독자층을 위한 책은 드물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도 내 글의 인물과 교감하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비인간적 체제에 대한 조롱은 무기”
이민자의 딸이 여러 한계를 딛고 끝내 성공하는 ‘착한 페미니스트’ 이야기를 기대하고 그의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면 이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산체스는 자신을 속인 유부남 무슬림 남성과 헤어지지 못하고, 여성의 외모를 두고 가차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그의 글을 두고 “쉽게 기분이 상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 수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산체스는 소수자성과 약점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내 글이나 성격이 모두의 입맛에 맞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면서 “나는 비인간적인 체제 속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를 감당하기 위해 체제를 조롱한다”고 전했다. 이어 “유전자(DNA)에 새겨진 게 틀림없을 만큼, 태어나면서부터 늘 반항적인 인간이었던 내게 글쓰기는 위로이자 무기이다. 불쾌해하는 사람에겐 아예 더 크게 웃어준다”고 했다.
“임신 중단, 최악의 경험이지만 날 살려”
산체스는 책에서 자신의 정신질환과 임신 중지(낙태)의 경험도 털어놓는다. 여성 독자들과 만나며 그는 “당신은 나의 우상”이라는 찬사를 들으면서도 ‘내가 삶을 마감하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떠올릴 정도로 심각한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또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와중에 임신을 하자 임신중지를 택하지만, 이 ‘선택’이 여성에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와 방황을 통해 “온전히 내가 얻어낸 삶에 다다를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여성의 임신 선택권을 지지하는 그는 “내가 겪은 임신 중지가 쉬웠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라면서도 “그 수술이 나를 살렸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임신 중지 반대론자들에 대해선 “어떻게든 여성을 통제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라는 소설에서 이민 가정 2세의 삶을 다룬 산체스는 “멕시코 시골 지역에서 가난하게 사는 어머니 세대 여성에 관한 소설을 쓰는 중”이라고 전했다. ‘허리가 부서져라’ 일하며 딸인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준, 먼저 온 여성들을 위해서다. 그는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서 “가혹한 삶을 산, 매력적인 그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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