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을 다 꺼낸 전시"…갤러리현대, 도윤희·김민정·정주영 '풍경'
과거 작품 되돌아보고 현재 관점서 재조명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삶도 그렇잖아요. 내가 옛날에 왜 그랬는지 지금 아는 게 있잖아요. 작업을 할 때는 그냥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그래서 그때 그런 작업을 했구나를 알고… 이번 전시는 여러가지로 좋았어요."(도윤희 작가)
"이번 작품 꺼내 본 게 20년이 넘어요. 그대로 있을까 궁금했을 정도였죠. 거울 보는 느낌이랄까요? 쑥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저한테 매우 의미있는 전시에요. 선배님(도윤희)옆에 제 작품이 걸려서 영광이고요."(정주영 작가)
갤러리현대에서 처음으로 기획한 여성 작가 3인전(김민정, 도윤희 정주영)은 경쟁력 있는 '여성 화가'들의 미학적 성취를 재조명하는 측면에서 새로운 전시다. 팔리는 그림, 신작전이 아닌 과거 작품을 되돌아보는 한편 작품의 생명을 과거에서 현재로 부활시켰다.
12일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만난 도윤희·정주영 작가는 서로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보는 듯 반가워했다.
정 작가가 "이번에 나온 작품은 20년 만에 꺼낸 것"이라고 하자 옆에 있던 도윤희 작가는 "나는 30년 만"이라며 마치 소녀들의 수다처럼 말했다. 또 정 작가가 영광이라고 하자 도 작가는 "작업을 지속하면 만날 수 있다"며 현실적인 직언으로 여성 화가의 삶을 압축했다.
옛날 작품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작가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도윤희 작가는 "작품은 내밀하게 내면의 현실을 표현하는거다. 전시를 하는 건 작업실 안에서 내장을 다 꺼내듯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거다. 그래서 전시할 때는 힘들다"고 하면서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에서 내장을 다 꺼낸 것"이라고 했다.
갤러리현대, 새 프로젝트 ‘에디션 R’
세 작가는 모두 갤러리현대 소속 작가로 각기 개인전을 연 바 있지만, 세 명의 작가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갤러리현대는 "새 프로젝트 ‘에디션 R’은 작가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창작 행위의 지평을 살피고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미적 여정을 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경험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3명 작가의 과거 작품을 묶은 이번 전시 타이틀은 '풍경(風景)'이다.
한자어로 풀면 ‘바람이 만드는 경치’라는 의미지만 전시에 나온 작품은 일반적인 풍경화가 아니다. 현실과 그 너머의 비가시적인 풍경까지 주제를 폭 넓게 아우르며 초기 주요 작품들을 소개한다.
도윤희, 김민정, 정주영 '풍경'은?
“제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삶입니다. 작가의 주제는 작가의 원인이고, 페인팅은 내적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그림은 작가의 내면 현실의 반영이며, 전시는 타인의 시선에 저의 내면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도윤희 작가)
도윤희 작가는 일상이 그림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다양한 기법의 추상회화를 통해 시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 왔다. 2007년 스위스 갤러리바이엘러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도윤희의 1996년부터 2009년까지의 작업은 흑연 드로잉 위에 바니시를 반복적으로 칠한 독특한 질감과 깊이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밤은 낮을 지운다'(2007-2008), '천국과 지상의 두 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다'(2004),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2008-2009)와 같은 시구 같은 제목은 그의 일기에서 나왔다. 도 작가는 "삶에서 마주하는 현상과 물질 등 인간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시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풍경이란, 내 마음과 머릿속을 완전히 비운 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가 내 마음과 눈에 투영되어 그 풍경과 내가 하나가 됐을 때를 의미합니다. 그럴 때 그 풍경이 나를 통해, 선이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작업으로 전유됩니다.”(작가 김민정)
'풍경' 전에서 소개된 김민정 작품은 불로 태워 독창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익히 알려진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머물며 완성한 작업들이다. 먹과 수채 물감의 관계, 얼룩과 번짐 효과를 극대화한 일련의 수묵 채색 추상 작품을 발표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1991년 이탈리아로 떠나 밀라노 브레라국립미술원에 입학한 그는 영상과 사진 작업이 주를 이루던 당시 학업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통해 익숙하게 다뤄온 한지를 재료로 삼았다.
“본다는 것은 개인의 감각적 경험을 넘어 집단의 기억, 회상을 통해 전통이나 원형의 문제를 수반한다고 봅니다. ‘봄’의 행위가 광학 장치와 비교되고 기억의 문제도 디지털 데이터화되는 지금의 환경에서, 여전히 본다는 것은 인간의 지각과 인식체계가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정주영 작가)
정주영 작가는 이번 전시 3명중 가장 막내 작가지만 중견 화가로 ‘산의 작가’로 통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가는 산의 풍경을 캔버스로 옮겨 그렸다. 이번 전시에도 산 같지 않은 산 작품을 선보였는데, 1995년에서 1997년 사이 작가가 암스테르담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
김홍도, 시중대 (부분)'(1998), '김홍도, 가학정 (부분)'(1996), '정선, 인왕제색 (부분)'(1999)은 김홍도와 정선이 현실을 옮겨 놓은 회화의 일부분을 확대한 작품이다. 진경과 실경, 관념과 실재, 추상과 구상 사이에 놓인 이중적인 ‘틈’ 회화의 세계를 제시한다. 전시는 13일부터 4월14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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