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파견근로자 직접고용 시 유사 직종 없으면 근로조건 법원이 결정”

유선희 기자 2024. 3. 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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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파견노동자 노동조건 관해 새 법리 제시
한국도로공사 정규직이 된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충북 청주 흥덕구 청주휴게소 녹지대 일대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사업주가 직접고용을 해야 하는 파견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정할 때 마땅한 기준이 없다면 법원이 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2일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596명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이러한 법리를 내놨다.

도로공사 용역업체 소속으로 통행료 수납 업무를 해온 수납원들은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2019년 대법원에서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그들은 도로공사를 상대로 “미지급한 임금을 달라”며 다시 소송을 이어갔다. 도로공사에 직접고용됐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아 임금을 적게 받았으므로 배상하라는 취지였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할 때 동종·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가 없으면 ‘기존 노동조건 수준보다 낮아져서는 안 된다’라고만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조건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뚜렷하게 명시돼 있지 않다.

수납원들은 도로공사의 경비원·청소원·식당조리원 등 조무원 직종에 적용되는‘현장직 직원 관리 예규’에 있는 임금 규정을 제시했다. 원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며 “도로공사가 약 215억원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법리를 내놨다. 대법원은 “기존 노동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사측이 파견 관계 자체를 부정해 자치적으로 노동조건이 형성되지 못할 때는 법원이 사용자와 파견노동자가 합리적으로 정했을 노동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때 법원이 노동의 내용과 가치, 고용형태나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파견법의 입법목적, 공평의 관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직접고용 의무가 있지만 사용자가 파견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를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 앞서 발생한 차별로 인한 손해를 회사가 배상해야 하는데, 법원이 배상 규모를 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조무원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반복적인 잡무를 처리하는 직종 전부를 지칭하므로 원고들과 같은 통행료 수납원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라며 “피고(사용자)가 수납원을 직접고용할 경우 적어도 조무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적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했다.

대법원은 다만 수납원들이 파업 참여, 결근, 사직 등 노동하지 않은 기간이 사측 책임인지는 원칙적으로 노동자에게 증명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입증이 불분명한데도 사측 책임이 인정된 일부에 대해선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 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도로공사 상황실 보조원 36명이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 등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은 현장직 직원 관리 예규 적용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 했다. 대법원은 상황실 보조원은 예규 적용 대상인 조무원과 업무 내용, 노동의 가치, 노동형태, 임금구조 등이 다르다며 예규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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