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좋은 데 갔으면”…소방관 아들의 유족연금 기부한 아버지

김현수 기자 2024. 3. 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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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기범 소방교의 생전 모습. 김 소방교의 아버지 김경수씨(83) 제공

“(아들이)좋은 데 갔으면 좋겠네요. 이제 후련합니다.”

대구 강북소방서에서 12일 오전 열린 ‘소방영웅 김기범 장학기금 기탁식’에 참석한 고 김기범 소방교의 아버지 김경수씨(83)가 나직이 말했다. 이날 김씨는 순직 소방공무원 자녀를 위해 써 달라며 평생 모아온 5억원을 기부했다. 5억원에는 김씨의 외아들인 김 소방교의 순직으로 받아왔던 유족연금도 포함돼 있다.

김 소방교는 1998년 10월1일 폭우가 쏟아지던 날 대구 북구 검단동 금호강에서 여중생 3명이 실종됐다는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섰다. 임무 도중 급류에 휩쓸린 그는 동료 소방관인 고 김현철 소방교와 고 이국희 소방위와 함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김 소방교의 나이는 26세로 소방관이 된 지 2년째 되던 날이었다.

김 소방교는 어릴 적부터 책임감이 강했다고 한다. 김씨는 금쪽같은 외아들이 남들처럼 평범한 군대에 가기를 내심 바랐지만, 아들은 기어코 특전사에 자원입대했다. 나라를 지킨다는 아들의 자부심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직업인 소방관으로 이어졌다.

아들을 잃은 김씨와 김씨 아내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아내는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아들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잠에서 깨어나기 일쑤였단다. 아들이 남긴 유족연금도 허투루 쓰지 못했다.

그렇게 아들을 그리워하던 아내는 3년 전 아들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농사를 지으며 ‘안 입고, 안 먹고’ 모아온 5억원을 남기고서다.

고 김기범 소방교의 생전 모습. 유가족 제공

김씨는 “아들이 소방관 시험에 합격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고 있던 얼굴이 생각난다”며 “한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아들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랐는데 이렇게 아들 이름의 장학금이 마련돼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 소방교와 함께 출동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 소방위의 아들 이기웅 소방령과 김 소방교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도 참석했다. 김씨가 ‘(아들이 )좋은 곳에 갔으면 좋겠다’며 읊조리듯 말하자 많은 동료 소방관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구소방본부는 김씨를 대구소방본부 명예 소방관으로 위촉했다.

김조일 소방청 차장은 “아픔에서 그치지 않고 같은 아픔을 겪은 순직 소방공무원의 자녀들이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내어줘 감사하다”며 “김 소방교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조직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소방영웅 김기범 장학기금’은 매년 순직 소방공무원 자녀와 대구 군위군 대한전몰군경유족회 후손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군위군은 김 소방교의 출생지다. 장학금은 순직 소방공무원 유가족 비영리법인인 사단법인 소방가족희망나눔이 운영한다.

고 김기범 소방교의 아버지 김경수씨(83)가 12일 오전 대구 강북소방서에서 순직 소방공무원 자녀를 위해 써 달라며 평생 모아온 5억원을 기부한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대구소방본부 제공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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