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학력 차별을 없애자”[박은하의 베이징 리포트]
“제1학력 차별을 없애자.”
중국에서 ‘제1학력’이란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첫 번째로 받은 학위’를 의미한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다른 대학에 입학해 받은 학위는 ‘제2학력’이 된다. ‘제1학력’이란 말에는 한국어의 ‘출신 대학’처럼 고교 성적이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는 맥락도 담겨 있다.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중국 최고국가권력기관)에서 제1학력 차별을 없애자는 ‘건의’가 나왔다. 전인대 대의원이자 중국 공학 분야 학술기구 중국공정원의 원사인 판푸셩(潘复生·62)은 지난 6일 전인대 회의에서 이력서에 학력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해 제1학력 개념을 없애고 취업·진학 시 학력차별 자체를 원천 차단하자고 제안했다.
‘블라인드 채용’을 하자는 제언이 전인대에서 다뤄진다는 점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몇몇 중국 매체들이 학력차별을 저출생 현상과 연결 지어 소개한 점은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원성의 목소리가 높고 명망가가 이를 대변한다고 해도 차별철폐는 ‘건의’나 ‘계도’로 이루기 쉽지 않다. 인류사에서 신분·성(性)·인종 등 각종 차별의 장벽을 낮춰온 것은 아래로부터의 격렬한 사회운동 때로는 혁명이었고 중국사에서도 그러했다. 중국 교육부는 2013년에도 대학 당국에 성별, 호적, 학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과의 공통점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학력차별 철폐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다는데 온라인에서 “학력이 그나마 가장 공정한 잣대 아닌가”는 댓글이 달리는 모습도 한국과 유사하다. 한국과 중국의 학력 차별 문제의 뿌리에는 ‘입신양명’이란 떨쳐내지 못한 전통적 가치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격렬한 경쟁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인대 및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외신기자로서 국무원 총리의 전인대 폐막식 기자회견이 중단된 것이나 중국의 신산업 투자계획, 외교부장의 한반도 관련 발언 등에 우선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양회에서 저출생, 청년실업, 노인 빈곤, 장시간 노동, 농촌 황폐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언이 쏟아졌다는 점에도 관심이 간다. 모두 한국에서 몇 년 전 심각하게 불거졌거나 현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안과 관련돼 있었다.
1990년대~2000년대 한국은 중국의 급속한 발전의 수혜를 누리며 ‘중진국 함정’을 뛰어넘는 성장을 했다. 한국의 투자와 기술 역시 중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 동아시아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곳이 됐으며,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곳이 됐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많은 개인들이 지치고 소진됐으며 아이를 낳지 않고 늙어가기로 선택한 사회이기도 하다. 2002년 개봉한 홍콩영화 <무간도> 주제가 가사에 “우리 모두 끊임없이 길을 재촉하며 출구를 잊어버렸다(我們都在不斷趕路忘記了出路)”는 대목이 있는데 동아시아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구절 아닌가.
중국은 한국에게 어떤 이웃인가. 한·중은 산업적으로 경쟁 관계가 되고 있는 만큼 더는 호혜적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아가 ‘적극적 대립이 한국의 살 길’이라고 보는 인식마저 있다. 과연 그럴까.
중국과 한국은 함께 길을 잃어버린 이웃이다. 그러기에 함께 길을 찾고 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양회에서 나온 사회·경제 관련 목소리들이 힘을 받기를 바라며, ‘건의’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한·중이 갈 길을 더욱 재촉하는 방식의 해결책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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