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미발표 시 공개한 장남 "하늘서 '뭐하러 했노' 하실 듯"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아버님께서 하늘에서 '뭐하러 했노?' 그러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겁도 납니다."
한국시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서정시인 박목월(1915~1978)의 장남 박동규(85) 서울대 명예교수는 12일 부친이 남긴 미발표 시들을 오랜 시간이 흘러 공개한 자리에서 복잡한 심경이 담긴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국문학자인 박 교수는 부친이 남긴 노트 80권에 담긴 미발표 시들을 후배 학자들의 도움으로 정리해 이날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아버님이 노트를 쓴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봐와서 (시가 쓰이는 과정을) 잘 압니다. 밤에 (시를) 써놓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하셨지요. 그런 것들이 노트 속에 순서대로 다 나타나 있습니다. 부친은 생전에 시집을 내는 걸 매우 어려워하셔서 시집도 몇 권 못 내셨지요."
박목월이 남긴 노트에 육필로 기록된 미발표 시는 완성된 형태의 작품만 290편에 달한다. 시인이 1930년대 후반부터 말년인 1970년대까지 쓴 시들로,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등 국문학자들의 일별을 거쳐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나거나 새로운 시풍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 위주로 이날 166편을 공개했다.
박목월의 창작 노트는 장남인 박 교수 자택에 62권, 경북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 18권이 오랜 기간 보관되고 있었다. 시인이 1978년 작고했으니 사후 46년 만에야 미발표 작품들이 공개된 것이다.
더구나 박목월이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높은 위상을 감안하면 공개가 상당히 늦어진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들 법하다.
박 교수가 부친의 노트에 적힌 친필 원고를 정리해 공개할 생각을 오래도록 주저하게 된 데에는 부친이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아버님이 (미공개 원고를 생전에) 발표하기 싫어서 하지 않으신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어길 수는 없겠단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문학적 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가 없는 입장이기도 했지요."
박 교수의 이런 마음을 잘 아는 후배 학자들은 지난해 8월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를 꾸렸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박목월의 노트들을 정리하고 분류·분석하기 시작했다.
미발표 시들을 공개하기로 한 데 대해 박 교수는 "시인인 아버지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데 필요한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새로운 시도나 시에 대한 실험성이 오히려 여기(미발표 작품들)에 더 많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버지가 시를 고치고 또 고치고 한) 과정도 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내서 학자들에게 맡겼다"고 덧붙였다.
박목월의 창작 노트들이 잘 보관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모친 고(故) 유익순 여사의 덕이라고도 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처럼 이사를 많이 다닌 집도 없어요. 경주, 대구, 서울로 옮겨 다니고 6·25를 맞았고 피란 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변고도 겪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부친의 노트를) 보따리에 싸 가지고 다니셨지요. 시인의 아내로서 이 노트들을 잘 보관해야겠다는 일념이셨지요. 부친이 작고하신 뒤에도 20년 동안 장롱 밑에 잘 넣어두셨어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박 교수는 부친의 노트에 담긴 시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해준 후배 학자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부친의 글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려 제대로 못 읽는다"면서 미발표 작품도 몇 개만 겨우 읽어봤다고 했다.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한 국문학자인 박 교수는 박목월 시인이 남긴 문학 유산이 잘 보전되고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박목월은 전 생애가 시에 얽히지 않은 시간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시인 중에 시를 중간에 관두거나 쓰러지고 한 분이 많습니다만, 목월은 해방 후 암흑기에서 시작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안고 살아간 (한국현대시문학의) 1세대의 중심적 인물임을 꼭 좀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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