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뒤를 닦지 말지어다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이유진 기자 2024. 3. 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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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_항문과 배변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프레스코화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애널로그’의 작가 이자벨 시몽은 이 그림에 눈길을 준다. 하나의 구멍에서 태어나고 먹고 사랑하고 유희하고 배설하고 죽고 묻히고 되살아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엿볼 수 있다는 얘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항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배아가 세포분열을 시작해서 가장 먼저 생기는 구멍인 ‘원구’가 항문이 된다. 그래선가. 인류가 지어낸 똥 이야기, 방귀 이야기 상당수가 새로운 생명과 탄생을 의미한다. 제주 탄생 설화에 나오는 설문대할망은 똥을 누어 360개의 오름을 만들었다. 16세기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소설 속 거인 팡타그뤼엘이 방귀를 한번 뀌면 ‘난쟁이’가 5만명씩 태어났다.

항문은 인체에서 맨 먼저 생겼지만 소화기관 맨 끝에서 악취 나는 가스와 찌꺼기를 내보내며 궂은일을 도맡는다. 더럽게 여기는 만큼 금기도 심해서 어린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지난 2009년 1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문화방송(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극 중 초등학생 해리(진지희)가 “빵꾸똥꾸야!”라는 말을 노상 입에 달고 다닌다며 제재(권고)를 내렸다. 국가 기관의 근엄한 결정을 보도하던 뉴스 앵커마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방송사고를 낼 정도로 진정한 코미디였다. 시청자는 그 유해한 대사를 들으려고 오히려 시트콤을 더 찾아보았고, 시청률은 껑충 뛰었다.

불결한 항문을 청결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욕으로 인간은 갖가지 방법을 써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치렁치렁한 전통 의상인 토가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대파처럼 생긴 식물 리크를 밑씻개로 사용했다. 로마 세습 귀족들은 장미수에 적신 수건으로 뒤를 닦았고 평범한 시민들도 해면이 달린 막대기로 뒤를 닦았다. 중국 명나라 황실은 비단을 썼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며느리밑씻개’라는 고약한 이름을 가진 가시 돋친 덩굴식물이 유명하다. ‘의붓자식엉덩이씻개’(마마코노시리누구이)라는 일본 식물명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게으른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긴 시부모가 뒷간 근처에 가시 박힌 풀꽃을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19세기 이후 가장 널리 쓰이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향기와 알록달록한 색깔을 넣거나 친환경 재생지를 쓰는 등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했다. 이제 배변과 뒤처리는 인권과 특권의 문제다. 가는 곳마다 변기 교체를 요구하는 위생적인 특권층이 있지만, 뒤처리에 전전긍긍하는 노약자와 장애인이 있고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는 세계 인구도 29억명이나 된다.

항문은 현대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기농 커피 관장은 한때 만병통치요법으로 각광 받았다. 체중 감량이나 해독 요법으로 단식할 때는 항문 관장이 필수다. 도, 기공수련, 요가, 명상의 세계에서 항문과 회음 주변은 에너지를 축적하고 순환시키는 중요한 포인트로 단련된다. 40년간 명상과 수련을 해왔다는 가수 김도향은 ‘항문을 조입시다’라는 제목으로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다. “너무너무 화가 날 때 너무너무 힘이 들 때 (…) 가끔씩 조이면 정말 좋아 조용히 항문을 조입시다….” 항문을 조았다 풀었다 반복하는 ‘케겔 운동’은 남성 정력을 강화하고 여성 변비를 해소하며 각종 생식기 질환 예방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변비로 고통받았던 그는 ‘항문기 이론’을 내놓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정신분석학 연구 전통이야말로 항문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변비가 심해서 배변 문제로 고통받았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보면, 아이들의 리비도(성욕, 성충동)는 젖을 물고 빠는 데 집중하는 구강기를 거쳐 항문으로 옮겨간다. 항문기의 아이는 똥을 참고, 누고, 만지고, 먹는 등 배변 관련 행위를 통해 사랑과 분노를 배운다. ‘항문기 성격’은 정리벽, 완고함, 인색함 등이다. 항문기 때 대변을 좋아했던 반동으로 커서는 위생에 집착하는 강박을 갖게 되고, 배설을 참던 아이는 성인이 돼 인색한 성격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 이를 입증하기 위한 여러 연구가 진행됐지만 부모의 혹독한 배변 훈련이 항문기적 성격의 원인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고 이 이론은 차차 힘을 잃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강박성 인격장애’라는 분류 속에 집착, 완벽주의, 과도한 헌신, 정리벽, 완고함, 엄격함과 고집 등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폐기되다시피 한 ‘항문기 성격 이론’과 흡사했다. 항문기 성격 유형의 유사 이론은 여전히 살아남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항문기 성격 이론이 남긴 문화적 파장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툭하면 ‘엄마 탓’이 가능해졌다. 이를테면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좋은 부모 행복한 아이’ 누리집에서도 배변 훈련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양육자의 태도를 강조한다. 인간을 낳고 주 양육자가 되는 수가 많다는 이유로 특정인 내면에 똬리 튼 어두움의 상당 부분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이론은 여성에게 심적 부담을 더했고 사회적 압력을 낳았다. 어디 무서워서 아이 낳겠나.

아이들이 변기 위에서 배변 훈련을 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항문 조절이 필수적인 ‘방귀 뀌기’도 부모에게 교육받은 것뿐 아니라 사회적 젠더 규범과 무관하지 않다. 2000년 영미권 학자들이 172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부러 종종 방귀를 뀐다고 답한 이성애자 남성 비율은 이성애자 여성보다 세 배 높았다. 방귀 및 관련 행동의 성차는 성별화에 따른 문제라고 연구자들은 결론 내렸다. 여성은 방귀나 대변 현상에 혐오감과 수치심을 더 많이 느꼈지만, 남성은 대변이나 방귀 관련 규범을 적극적으로 위반하는 행동이 더 남자다운 것이라고 보았다.

때로 방귀는 뜻하지 않게 대변을 지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은밀한 곳에서 조용히 처리되어야 한다는 배변의 규칙을 위반하는 자는 즉각 ‘인간성’을 철회 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스스로 화장실에서 배변 처리를 할 수 없는 만성질환자, 노인, 중증장애인은 대변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수치심을 느낀다. 일본 작가 가시라기 히로키는 20살 때 궤양성 대장염이 생겨 괄약근을 조절하기 힘들어지고 아무데서나 싸버릴까 두려워 먹지도 외출하지도 못했다. 먹는 것이 없어도 장 내 세포 찌꺼기는 설사로 쏟아졌다. 화장실 변기까지 당도하기 전에 대변이 나와버릴 때, 그 수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배변은 혐오, 수치와 연결된다.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분비물에 대한 강한 거부감에서 혐오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배설물에 관한 혐오는 자신의 동물성, 취약성, 유한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남의 배설물을 접촉하는 데서 혐오가 생기고, 자기 배설물을 잘못 처리하는 데서 수치심이 생긴다. 썩은 음식, 끈적거리는 배설물, 죽음, 변태적 섹스, 비위생적 행동에 혐오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은 동성애에 관한 편견이 특히 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반동성애적 편견은 항문에 대한 혐오와 관련이 있다. 누스바움은 자신의 항문 속으로 무언가 침투될 수 있다는 상상이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에 스며 있다고 본다. 특히 남성일 경우일 텐데, 자신의 직장이 여성의 질처럼 동물적인 배설물의 저장고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진 ‘동물성’과 거리를 두려는 의지에서 혐오가 생긴다는 뜻이다. 특권을 가진 이들은 몸에서 나온 역겨운 분비물을 특정 인종, 계급, 성별을 가진 타자에게 투사한다. 더럽고 혐오스러운 타자로서 여성이나 동성애자는 ‘걸레’와 ‘벌레’에 빗대어져 종속적인 존재가 된다. 반면 특권 집단은 동물성에서 초월해 깨끗하고 고귀한 ‘인간’으로 자신을 드높인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평생 항문으로 싼 자기 똥을 엉덩이에 짓이겨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어날 때 조절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인간이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날 때도 항문은 저절로 열리고 마지막 분비물을 뿜어낸다.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시신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부패의 과정을 거치며 진득해지고 미생물의 밥이 되는 것이다. 이 때 미생물을 유인하는 마중물 구실을 하는 게 배변이고 그 행위의 주체가 바로 항문이다.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우리는 생명에서 왔고, 우리 자신이 곧 다른 생명으로 통하는 통로”라고 말했다. 항문은 우리가 생명에서 올 때도, 다른 생명으로 통할 때도 성실하게 제 몫을 한다.

※참고문헌: 애널로그(이자벨 시몽 지음, 윤미연 옮김)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로즈 조지 지음, 하인해 옮김) 먹는 것과 싸는 것(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김영현 옮김) 혐오와 수치심(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이유진 |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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