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 넘어선 박목월의 세계···46년 잠든 육필시 290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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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 박목월의 미공개 작품 290여편이 대거 공개됐다.
12일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발간위)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인 타계 후 46년 동안 묵혀있던 육필노트와 시 166편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시는 박 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택에 소장한 노트 62권과 경북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보관 중인 18권의 노트에서 추려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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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 고뇌·참혹한 전쟁 등 다뤄
기존 시풍과 달라 재평가 목소리
‘6·25 때 / 엄마 아빠가 다 돌아가신 / 슈샨보이. / 길모퉁이의 구두를 닦는 슈샨·보이 ···(중략)··· 이밤에 어디서 자나 슈샨·보이 / 비가 오는데, 잠자리나 마련 했을가. 슈샨·보이’ (박목월 시인의 미공개 시 ‘슈샨보오이’ 중 일부)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 박목월의 미공개 작품 290여편이 대거 공개됐다. 시인이 작고 직전까지 쓴 미발표 시들로, 시인의 내면을 전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기회이자 한국 현대시의 반경이 넓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2일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발간위)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인 타계 후 46년 동안 묵혀있던 육필노트와 시 166편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시는 박 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택에 소장한 노트 62권과 경북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보관 중인 18권의 노트에서 추려낸 작품들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말년인 1970년대까지 쓴 총 318편 가운데 기존에 발표되지 않은 작품 290편 중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고 주제가 다양하며 창작의 변화 과정이 잘 드러난 작품 166편을 선별해 공개했다는 설명이다. 박목월 시인의 제자인 우정권 단국대 교수가 주축이 돼 지난해 8월 발간위를 구성했다.
박목월 시인은 평소 습작 노트에 시를 쓴 뒤 신문사나 출판사에 보내기 전에 최종적으로 퇴고를 해 완성된 시를 원고지에 베껴써 제출하는 작업 방식을 취했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노트에 초고를 썼다가 시집에 옮겨 적는 과정에서 시상과 어휘가 변해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장남인 박 교수는 “살아 생전에 시집 내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셔서 쓴 시 중에 일부만 내놓으셨다”며 “한 시인으로서의 생애를 보는 데 있어 필요한 자료라고 생각해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시도들, 시에 대한 실험성이 미공개 작품에 더 많다”고 전했다.
시기별로는 1936년, 1939년으로 창작 연도가 표기된 작품을 포함해 1950년대의 제주를 소재로 한 시들, 1960년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노래한 작품, 역사적 격동기였던 해방과 한국전쟁 등에 관해 시인이 작고 직전인 1970년대에 창작한 시편들이 포함됐다. 시인은 말년인 1970년대에는 6·25와 해방, 근대 등을 노래했다. 기존에 알려진 그의 시풍과는 상당히 결이 다른 작품들이 많다.
특히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시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공개되지 않은 시들 중에는 생활인으로서의 고뇌라든지 내면으로의 침잠, 6·25전쟁의 참혹함 등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민 등이 다양하게 담겼다. ‘슈샨보오이’는 구두닦이 소년(shoeshine boy)을 뜻하는 말로, 6·25 전쟁으로 양친을 잃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구두닦이 소년에게 느낀 연민을 담아 전쟁 후의 참혹함을 담아냈다.
동시 ‘콩꼬투리’ 등 완성된 형태의 동시 30여 편도 발견됐다. 우 교수는 “시인 박목월 재평가는 물론이고 ‘한국의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많은 논문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박목월 시인은 전 생애 중 시에 얽히지 않은 시간이 한 번도 없었다”며 “해방 이후의 암흑기부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안고 살아간 1세대의 중심적 인물을 꼭 기억해달라”고 전했다.
경주, 대구, 서울 등으로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고 6·25 피란을 다니면서도 80권에 달하는 시작 노트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박목월 시인의 아내인 고(故) 유익순 여사 덕분이었다. 유 여사는 시인이 출근하면 모기장 밑에 노트를 감추고 전쟁 중에 북한 인민군 치하에서 생활할 때는 노트를 지붕 위에 감추면서 지켜냈다. 박 교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따리에 고이 쌓여 있던 노트를 20년 만에 꺼내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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