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의 대관식, 인종차별 논란, 그리고 故이선균까지, 아카데미가 남긴 것

듀나 칼럼니스트 2024. 3. 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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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제96회 아카데미시상식이 열렸다.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한 7개 상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에게 돌아갔고, 요르고스 안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이 여우주연상을 포함한 4개 상을 받았다.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국제영화상과 음향상의 2개 상을 받았고, <바튼 아카데미>, <바비>, <추락의 해부>에게는 각각 하나씩 상이 돌아갔다.

작품상 후보 중 <플라워 킬링 문>, <패스트 라이브즈>,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아메리칸 픽션>은 상을 받지 못했다. 결과는 대부분 예측과 일치했고 엠마 스톤의 여우주연상 정도가 기대에서 살짝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놀라웠던 (그러나 모두 기대했던) 결과는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시각효과상 수상이었다. 이는 더 이상 할리우드가 블록버스터 시각효과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청률은 소폭 상승했다. 잠정집계된 시청자 수는 약 1,950만 명으로 지난해의 1,870만 명보다 4.3% 증가한 수치다. 시상식이 이전보다 빠른 오후 4시에 시작했고 <오펜하이머>, <바비>와 같은 화제작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시상식이 팬데믹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화제에 비해 시청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의 결과는 언젠가 일어날 일을 치렀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그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관식이다. 놀란은 지금까지 업계와 비평계, 대중의 엄청난 지지를 받아왔지만 아카데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장 큰 이유는 작품 대부분이 장르물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놀란이 첫 번째 감독상 후보작이 제2차 세계대전 전쟁영화였던 <덩케르크>였다는 걸 보면 아카데미측의 일관성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여러 모로 비슷한 경력을 거친 스티븐 스필버그와 겹친다.

모두가 결과를 예측했다는 건 <오펜하이머>의 완성도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 <오펜하이머>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의미가 있는 주제를 도전적인 형식으로 다룬 훌륭한 영화이다. 단지 시상식 안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익숙한 그림, 그러니까 백인 남자의 고뇌에 대한 예찬으로의 회귀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건 놀란의 잘못은 아니다. 창작자는 창작물의 소재를 그렇게까지 자유롭게 택할 수 없다.

하지만 꽤 다양했다고 할 수 있는 후보작 (사회자 지미 키멜이 지적했듯 일단 작품상 후보 중 외국어 영화가 세 편이나 됐다) 사이에서 <오펜하이머>가 서 있으면 아무래도 결과가 단조롭다.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였던 릴리 글래드스톤이 엠마 스톤에게 밀렸기 때문에 연기상 수상자의 그림은 더 단조로워졌다. <바튼 아카데미>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가 없었다면 더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시상식에서는 상을 받은 배우들의 인종차별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 지적되었다. 올해는 전년도 이성 수상자가 상을 주는 형식에서 벗어나 작년 수상자를 포함한 이전 수상자 다섯 명이 후보자들을 예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고 이미 2009년에 열린 81회 시상식에서 한 번 한 적 있는 걸 부활시킨 것이다. (유튜브의 아카데미 계정에서 당시 시상식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이 오글거리지만 업계 동료의 인정을 받는다는 아카데미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무의미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섯 명의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있는 동안 일이 꼬여 버렸다. 아니, 이건 지극히 관대하게 해석한 것이다. 왜 수상자가 전년 수상자를 외면하는 것 같은 일이 전년 수상자가 아시아계 배우였을 때만 일어난 것일까. 여기서 동영상을 분석하고 몇 시간 뒤 양자경이 인스타그램이 올린 해명글의 의미를 읽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생활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오직 차별대상인 당사자에게만 보이고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역시 그 당사자들뿐만이라면 이 자체가 차별적 환경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작년의 <나발니>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마리우폴에서 20일>이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탄 것은 아카데미의 의도적인 정치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에서 가장 용감한 정치적 메시지를 보여준 건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조나단 글레이저의 수상소감이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은 영화를 만든 유대인 감독이 가자에서 자신이 영화 속에서 그린 것과 같은 성격의 인종청소를 보고 거기에 분개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1년 동안 죽은 동료들을 추모하는 <인 메모리엄>의 첫 주자는 그 동안 고인이 된 알렉세이 나발니였다. 올해의 리스트에는 얼마 전 세상을 뜬 이선균도 포함되어 있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오펜하이머>메이킹필름, <가여운 것들><기생충>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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