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택배 포장에서 '3차원 테트리스' 잘 해야 하는 이유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2024. 3. 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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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력] '포장 빈 공간 50% '규제에 맞선 기업 지속 가능 성장은?


쿠팡, 지마켓, 쓱 등 온라인 쇼핑과 택배 배송이 생활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죠. 거대 유통기업이었던 대형마트를 압도할 만큼 이커머스가 커진 지 오래입니다. 작년 기준 통신판매업 등록업체 수가 132만 개, 이들이 매일 숨가쁘게 전국을 오가며 배송하는 택배 수는 36억 개가 넘습니다. 하루 평균 1천만 개나 되는 엄청난 수준입니다.

쇼핑이 편리해진 만큼 부작용도 뒤따릅니다. 대표적인 게 환경 문제입니다. 택배 포장재에서 쏟아져 나오는 폐기물이 전체 생활폐기물의 9%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쓰레기 발생 부추기는 택배 포장 문제 때문에 2년 전 환경부가 내놓은 규제가 이른바 "빈 공간 50% 이하, 포장 횟수 1회"라는 제한입니다. 위반 시 최대 3백만 원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기업들의 준비 기간 마련을 위해 2년이 경과한 뒤인 2024년 4월 30일부터 시행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준비기간 동안 환경부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확정하지 못했고, 유통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결국 또다시 2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종이컵과 빨대 문제 등 일회용품 규제가 수년간 뒷걸음질 치면서 환경부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고조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택배 포장 '빈 공간 50% 이하' 맞추려면

유통업체들의 가장 큰 걱정은 '빈 공간 50% 이하' 규제에 맞추려면 수십 종의 다양한 포장 박스를 갖춰야 한단 겁니다.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 매일 시간과의 싸움을 치르는 이커머스들로선 박스 수가 이렇게 늘어날 경우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포장 작업 속도에 결정적인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겁니다. 업계 현실도 이해됩니다.


특히 쿠팡 등 대형 업체들의 경우 통신판매업과 통신판매중개업을 병행하는 구조입니다. 즉 상품을 직접 사들여서 자체 물류센터에서 보관하다 고객 주문에 따라 직접 포장 발송하는 이른바 직매입 영업이 있는가 하면, 오픈마켓 플랫폼만 열어준 뒤 개벌 셀러들이 고객 주문을 받아 자체 포장 배송하는 경우가 많죠.

이럴 경우 셀러들의 규모가 천차만별인데 소규모 업체일수록 '빈 공간 50%' 규제 대응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제품의 부피와 포장 박스 부피 비교를 통해 50% 초과 여부를 판별해야 하는데, 제품 하나만 넣는 게 아니라 다양한 체적을 가진 제품을 여러 개 담는 경우가 흔한 만큼 다양한 조합의 부피 측정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포장 박스 크기 줄이고 또 줄이기


넘쳐나는 포장 폐기물 이슈가 수년간 계속되면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도 속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산업통상부 R&D 사업으로 진행된 '유통 포장 최적화 및 자동 설계 프로그램'이 그런 겁니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유통물류기술센터, 로젠소프트 등이 공동 수행했으며 지난 2월 과제가 종료된 뒤 현재 부처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R&D의 핵심은 포장 박스 크기와 여기에 넣을 여러 제품들 사이의 공간 최적화라는 함수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기존 유통이나 물류업체들은 CBM(Cubic Meter)라는 간이 기준을 갖고 이 문제에 대응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품이 갖는 체적을 물의 부피로 단순화해 표시한다고 가정해 보죠. 아래 그림처럼 3개의 상품이 있을 경우 크기에 따라 체적 1단위, 3단위, 3단위라고 특정합니다. 둘째와 셋째는 물로 치면 똑같이 부피가 3단위로 계산됐지만 실제 생김새는 다릅니다. (얼마든지 이런 경우가 생기겠죠.) 이 3가지 상품 체적을 단순 합산하면 7단위가 됩니다. 이 7단위 체적을 담으려면 박스 체적이 7단위보다 더 커야겠죠.

CBM에서는 제품과 박스의 체적을 물을 부었을 때 차지하는 부피로 계산했지만 실상은 물 붓기와는 다르니까요. 반드시 자투리 빈 공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정밀하게 계산하기 어려우니 제품 크기보다 대충 더 큰 사이즈에 박스에 담게 되는 겁니다. 업계에서는 제품 합산 체적이 박스 체적의 70%를 넘으면 한 단계 더 큰 박스를 사용하거나 두 번째 박스에 제품 하나만 달랑 넣고 배송하는 식입니다. 여기서 포장재 낭비가 발생합니다.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완성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서는 기존 단순화된 체적 계산을 3차원 치수 정보 기반 조합 방식으로 고도화했습니다. 박스 안에 제품 담기를 물 붓기로 단순화한 게 아니라 제품이 갖는 3차원 체적 정보를 실제로 적용해 박스 안에 담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3차원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셈입니다. 여러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은 어떻게 쌓을 때 전체 부피가 최소가 될 거냐는 함수를 수학적으로 푸는 거죠. 그리고 기존 사용해 온 규격화된 박스 크기 대신에 업체별로 딱 맞는 박스의 모양과 크기를 결정해 주는 시스템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j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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