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플랫폼 노동 지침 합의···플랫폼 통제·지시 땐 ‘노동자 간주’

선명수 기자 2024. 3. 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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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지침 발효 이후 회원국 2년 내에 입법해야
프·독 반대로 ‘사용자 기준’ 설정 초안보다 후퇴
프랑스 파리 외곽 생투앙에서 배달 애플리케이션 ‘딜리버루’에서 일하는 라이더가 배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배달 앱, 차량호출 앱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받아 플랫폼의 통제하에 일하는 이들을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간주하고 이들의 권리를 개선하기 위한 첫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EU 상반기 순회의장국인 벨기에는 11일(현지시간) 고용사회장관 회의에서 ‘플랫폼 노동 지침(Platform Work Directive)’ 최종안이 승인됐다며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유럽인 2850만여 명의 권리와 조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EU 이사회도 성명을 통해 “유럽 전역에서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기준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지침은 내달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승인되면 발효된다.

EU 집행위원회는 플랫폼 노동이 급증하자 2021년 12월 EU의 법적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지침을 제안했다. EU에 따르면 현재 유럽 내 플랫폼 노동자는 2850만명에 달하며, 내년에는 43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침은 차량호출 서비스인 ‘우버’ 기사, 배달 앱인 ‘딜리버루’ 라이더 등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이들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들에게 유급휴가와 실업수당, 최저임금 등을 보장해 노동 여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그간 자영업자로 분류돼 노동법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온라인 플랫폼이 종사자의 작업을 지시·감독하고 급여 및 근무시간 등 근로조건을 통제하는 경우 이들을 플랫폼에 고용된 ‘노동자’로 추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법률상 추정’에 따라 플랫폼 노동 종사자는 자신을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할 근거를 갖게 된다. 플랫폼이 이들과 고용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할 경우, 그 입증 책임은 플랫폼 측에 있다.

다만 노동자성 인정 기준에 대한 세부사항은 각 회원국이 각국의 국내법, 단체협약, 판례 등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했다. ‘지침(Directive)’은 EU 입법 종류의 한 형태로, 각 회원국은 이런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침 발효 2년 이내에 관련법을 제정해야 한다.

지침은 플랫폼이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에 대해 노동자에게 충분히 설명할 의무도 규정했다. 노동자의 생체 정보나 심리 상태 등 특정 개인정보를 인공지능(AI) 등을 통해 관리하는 것 역시 금지했다. AI나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한 노동자관리를 규제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다만 이번에 승인된 최종안은 온라인 플랫폼이 ‘사용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설정 등에서 당초 논의된 초안보다 퇴보한 것이다.

초안에는 플랫폼이 근무시간 통제, 전자적 수단으로 업무 감독, 유니폼 등 서비스 제공 규칙 설정, 급여 수준 및 상한선 설정, 노동자의 독자적 고객 확보 제한 등 5가지 지표 중 2가지 이상에 해당할 경우 ‘사용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최종안에서는 이 내용이 아예 삭제됐다.

당장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 우버는 “EU 국가들이 ‘현상 유지’에 투표했다”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는 각 국가마다, 법원마다 그 기준이 결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후퇴는 지난해 12월 EU 집행위원회와 이사회, 유럽의회 간 3자 협상이 타결된 뒤 독일과 프랑스, 그리스, 에스토니아 등이 뒤늦게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자국 노동법과의 충돌, 플랫폼 산업 위축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의장국인 벨기에가 타협의 일환으로 지난달 5가지 지표를 뺀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이들 국가는 계속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날 장관회의에서 그리스, 에스토니아가 막판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가중다수결 승인 요건이 갖춰져 타협안이 승인됐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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