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민간인 반자동 소총 허용 논란…“총기 범죄·무장 부추길 것”
민간인의 반자동 소총 소유를 앞두고 필리핀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총기를 사용한 범죄와 테러, 반군의 무장이 증가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11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조만간 민간인이 반자동 소총을 소유할 길이 열리는 것을 두고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필리핀 공화국법과 시행규칙, 종합 총기 및 탄약 규제법에 따라 그동안 필리핀의 민간인은 소형 무기만 취득 및 소유할 수 있었다. 소형 무기는 “주로 개인용으로 설계된 총기 또는 일반적으로 손이나 어깨에서 발사할 수 있는 무기를 의미하며, 완전 자동 발사가 불가능하고 소총의 구경을 초과하지 않는 총기”로 정의됐다.
그러나 지난 4일 필리핀 경찰(PNP)은 허가를 받은 민간인에 한해 반자동 소총을 소유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소총의 구경을 초과하지 않는”이란 규정이 삭제돼, 소형 무기는 완전 자동 발사가 되는지 아닌지로 따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구경 7.62㎜ 이하의 반자동 소총을 소형 무기로 간주해, 민간인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반자동 총기를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한 발씩 발사하고 자동으로 장전되는 총기’로 정의한다.
필리핀 경찰 대변인은 “소유 허가를 받았더라도 반자동 소총을 운반하거나 야외로 들고 나가려면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개정안이 이미 공표 절차를 밟고 있으며 오는 15일 이후부터 발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행을 앞두고 총기를 사용한 범죄가 늘어나리란 지적이 이어진다. 정치권에선 특히 내년 선거를 앞두고 범죄와 테러 위협이 증가하리라 우려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여동생인 이미 마르코스 상원의원은 “경찰이 법 집행의 효율성과 공공 안전을 훼손함으로써 제 발등을 찍고 있다”며 반자동 소총 허용의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한 결의안을 제출했다.
카를로스 이사가니 사라테 전 의원은 “이 값비싼 ‘장난감’을 살 자금이 있는 엘리트 계층의 총기 문화를 부추길 것”이라며 “또한 이 정책은 선거 기간에 군벌의 무기고를 채울 것이다. 이 정책은 폐기돼야 한다”고 현지 매체 래플러에 밝혔다.
개정안을 옹호하는 측에선 총기 소유에 여러 제한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역시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정에 따르면 총기를 소유하려는 자는 21세 이상의 필리핀 시민이어야 하며 약물 및 정신과 검사, 경찰과 법원의 허가, 소득세 신고, 총기 안전 및 책임 있는 총기 소유에 관한 교육 등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이 절차를 돕는 브로커와 비공식 총기가 만연한 상태다. 필리핀 경찰은 총기 소유 허가를 받은 사람이 약 119만명이라고 밝혔으나, 비공식적으로는 약 400만명에 달한다는 민간 추산이 있다.
리사 혼티베로스 상원의원은 “더 엄격한 총기 규제를 시행해야 할 시점에 반자동 소총을 허용하는 건 잘못된 조치”라며 “어떠한 민간인도 총을 수백 정 쇼핑할 수는 없어야 한다. 민병대가 쓸 만큼 충분한 무기를 가진 이를 단순히 수집가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필리핀에선 총기를 동원한 표적 살인이 종종 발생한다. UNODC에 따르면 2016~2019년 총기로 인한 고의적 살인은 1만600건이었다. 특히 선거 기간에는 종종 정치적 경쟁자, 여론조사 관계자,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 발생한다. 2009년엔 후보자 제출 과정에서 총기 난사로 58명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 희생자 중 34명은 언론인이었다. 지난 3월에도 현직 주지사가 암살되며 민간인 10명이 함께 살해당했다.
하노이 | 김서영 순회특파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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