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생일 맞은 美 6·25 참전용사 "날 살려준 군의관들 덕분"

김태훈 2024. 3. 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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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1939∼1945), 6·25전쟁(1950∼1953), 베트남전쟁(1960∼1975)에 모두 참전한 미국의 노병(老兵)이 100세가 되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다친 자신을 살려준 군의관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며 미국은 신속히 참전을 결정했고, 그리어도 동료 및 부하 장병들과 함께 한국에 파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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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부터 베트남전까지 3번의 전쟁 경험
"큰 부상 없이 살아남은 것에 그저 감사할 뿐"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6·25전쟁(1950∼1953), 베트남전쟁(1960∼1975)에 모두 참전한 미국의 노병(老兵)이 100세가 되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다친 자신을 살려준 군의관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전공의와 의대 교수를 비롯해 모든 의사들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환자 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에드워드 그리어 미국 예비역 육군 소장(앞줄)이 100세 생일을 맞아 자택을 방문한 미 육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리어는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에서 모두 싸운 참전용사다. 미 육군 홈페이지
12일 미 육군 홈페이지에 따르면 1924년 3월8일 태어난 에드워드 그리어 예비역 육군 소장이 지난 8일 100세 생일을 맞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공군 대장), 랜디 조지 육군참모총장(대장) 등이 그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다. 그리어의 자택이 있는 텍사스주(州) 엘파소와 가까운 ‘포트 블리스’ 기지에서 복무 중인 후배 흑인 지휘관들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 그리어에게 존경의 뜻을 표했다.

그리어의 고향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어느 광산촌이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그는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18세 이상 남성은 징집 대상이었고 그리어도 이듬해인 1943년 육군에 병사로 입대했다. 포병 병과를 받은 그리어는 용맹하게 싸웠고 무공을 인정받아 1945년 전쟁이 끝날 무렵엔 상사로 진급했다. 한때 휘하에 병사 150명을 거느릴 정도로 책임이 막중했다.

전후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그리어는 군생활의 매력을 잊을 수 없었다. 학생군사교육단(ROTC)에 들어가 학업과 군사훈련을 병행한 그는 1948년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장교 신분으로 처음 겪은 전쟁터가 바로 한국이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며 미국은 신속히 참전을 결정했고, 그리어도 동료 및 부하 장병들과 함께 한국에 파병됐다. 이 기간 그는 뛰어난 리더십과 용기로 은성무공훈장(Silver Star)을 받았다. 훈격으로 따져 미군에서 3번쨰로 높은 훈장이다.

그리어는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다. 미국에서 2차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을 모두 경험한 이는 극히 드물다. 그리어는 베트남에서도 큰 공을 세웠고 정부는 그에게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여했다. 3개 전장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장군으로 진급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미국 사회는 인종차별이 극심했고 흑인이 장성에 오르기는 어려웠다. 1976년 52세 나이로 군복을 벗을 당시 그리어의 계급은 별 둘 소장이었다.
에드워드 그리어 미국 예비역 육군 소장의 젊은 시절 모습.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에 모두 참전한 그리어는 1976년 소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미 육군 홈페이지
그는 장교가 되기 전 병사로 복무한 경험이 리더십을 기르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이어 그 누구도 온전히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는 만큼 주변 사람들과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군인으로서 쌓은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리어는 뜻밖에도 “지금 현재 살아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몸 한 번 잘못 움직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3번의 전쟁을 겪으며 큰 부상 없이 무사히 살아남은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라며 “전장에서 나를 살려준 육군의 모든 군의관들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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