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팔려고…들리지 않은 노인 노리고, 원격으로 대신 가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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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당시 87살이었던 ㄱ씨는 은행을 찾았다가 홍콩에이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했습니다.
오프라인 판매 비중이 압도적인 은행과 달리 증권사는 주로 앱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이엘에스를 팔았는데, 당시 증권사 판매직원은 원격제어 프로그램으로 ㄴ씨 컴퓨터에 접속해 대신 가입절차를 밟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수가 고점을 향해 가던 2021년 1월에 이엘에스에 가입한 ㄷ씨는 투자성향 분석 결과 고위험상품 가입이 부적절한 투자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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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당시 87살이었던 ㄱ씨는 은행을 찾았다가 홍콩에이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했습니다. 이엘에스는 기초자산의 움직임에 따라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상품이기 때문에 가입 전 충분한 설명을 듣게 돼 있습니다. 청력이 좋지 않았던 ㄱ씨는 은행원에게 “들리지도 않고 (내용을) 알지도 못 하겠다” 이야기했지만, 은행원은 ㄱ씨에게 “알겠다”고 답할 것을 반복해 요청했습니다
청력 약한 87살 노인에 가입 반복 권유…‘컴퓨터 원격조작’ 대리 가입도
71살 ㄴ씨의 경우 2021년 11월 증권사를 통해 이엘에스에 가입했습니다. 가입자는 ㄴ씨인데 증권사 판매직원은 ㄴ씨가 아닌 ㄴ씨의 배우자와 통화하면서 가입을 진행했습니다. 오프라인 판매 비중이 압도적인 은행과 달리 증권사는 주로 앱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이엘에스를 팔았는데, 당시 증권사 판매직원은 원격제어 프로그램으로 ㄴ씨 컴퓨터에 접속해 대신 가입절차를 밟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금융감독원이 11일 공개한 에이치지수 이엘에스 잠정 검사 결과를 보면, 은행과 증권사가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설명의무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례가 여럿 발견됐습니다. “상품 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고령의 부모님이 어쩌다 가입하게 되셨는지 모르겠다”던 투자자들의 주장이 일부 확인된 셈입니다.
“충분한 설명 들었다” 직원이 대신 대답해 녹취 남기기도
불완전판매 사례는 이 밖에도 다양했습니다. 지수가 고점을 향해 가던 2021년 1월에 이엘에스에 가입한 ㄷ씨는 투자성향 분석 결과 고위험상품 가입이 부적절한 투자자였습니다. 하지만 은행 직원은 ㄷ씨에게 “가입이 불가하다”고 안내하면서도 작은 목소리로 ‘이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요’라고 자신에게 말하라고 유도했습니다. 이렇게 유도된 발언을 바탕으로 투자성향에 적합하지 않은 고위험상품 가입이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ㄹ씨의 경우에는 2021년 6월 은행을 방문하기가 어려웠는데, 판매직원이 ㄹ씨 대신 투자성향진단은 물론이고 가입신청서도 대신 작성·서명했습니다. 판매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을 들었는지 등을 녹취로 남겨야 하는데 다른 직원이 ㄹ씨를 대신해 대답하기까지 했습니다. 배우자와 연락하면서 유효기간이 지난 가족관계증명서를 변조해 가입을 진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엘에스 손실, 6조원 육박 예상도
금감원이 이번 조사에 나서게 된 것은 2021년 가입한 이엘에스의 만기(3년)가 돌아오면서 대규모 손실이 확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1만2천을 웃돌며 고공행진하던 홍콩에이치지수는 이후 우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현재는 고점의 절반도 안 되는 5천대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개별 상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엘에스는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시점의 50∼60%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2월 만기가 돌아온 이엘에스 2조2천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조2천억원이 손실을 봤고, 만약 지금과 유사한 수준(5678포인트)으로 홍콩에이치지수가 유지된다면, 올해 안에 4조6천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분쟁조정기준안이 나왔지만 가입자별 상황은 물론이고 불완전판매 요소도 워낙 다양해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은 판매사가 투자 손실액을 최대 100%까지 배상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투자자 대부분의 예상 평균 배상비율은 20∼60%로 넓게 제시하면서 “구체적 배상비율을 일률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여전히 일부 투자자들은 금감원의 조정안이 불충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엘에스 투자경험이나 과거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 규모에 따라 배상비율이 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자율 배상에 동의하지 못하는 투자자는 소송 절차 등을 밟을 수도 있어, 실제 배상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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