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포털사, ‘투톱’ 구축·여성 리더십 확산…왜?
‘게임 업체들은 ‘투톱 체제’로, 포털은 ‘여성 리더십’으로.’ 국내 포털·게임 업체들이 앞다퉈 경영체제 쇄신에 나서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시장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사회적 요구에 맞추기 위해 기존 체제를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이다. 창업자 가족경영 행태에서 벗어나고, 법률·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공동대표 내지 각자대표로 앞세우는 것도 눈에 띈다.
12일 국내 주요 게임·포털 업체들의 올 정기주총 안건을 보면,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쓰리엔(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이 모두 공동대표 내지 각자대표 체제를 갖춘다. 두 명의 대표이사가 각자 혹은 공동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이들 업체가 이번 정기주총에서 새로 선임하는 공동대표·각자대표가 모두 법률·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이들 업체의 정기주총은 모두 28일로 잡혀있다.
넥슨(넥슨코리아)은 강대현 최고운영책임자(COO)와 김정욱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를 공동대표로 선임한다. 이정헌 대표는 일본법인 대표로 옮겼다. 김 신임 공동대표 내정자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생전에 영입했다. 그동안은 대외 총괄과 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왔다. 넥슨은 “강 공동대표는 게임 개발·서비스 등 사업에 집중하고, 김 공동대표는 관리와 대외 쪽을 총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는 박병무 브이아이지파트너스 대표를 공동대표로 선임한다. 박 신임 공동대표 내정자는 김앤장 법무법인 변호사를 지낸 법률 전문가다. 하나로텔레콤(지금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대표 등도 지냈다. 김택진 창업자와 대일고·서울대 동문이고, 2007년부터 엔씨소프트 사외이사와 비상무이사를 맡아왔다. 이 업체 관계자는 “김택진 대표는 게임 사업에 주력하고, 박 대표는 관리를 총괄한다”며 “경영체제 변화를 계기로, 김택진 창업자의 부인 윤송이 사장과 동생 김택헌 부사장은 각각 겸직하던 본사 최고전략책임자(CSO)와 최고퍼블리싱책임자(CPO) 직책에서 물러나 국외 사업에 전념하게 된다”고 밝혔다.
넷마블은 경영기획을 총괄해온 김병규 부사장을 각자대표로 선임한다. 김 각자대표 내정자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삼성물산 법무팀장을 지낸 법률 전문가이다. 넷마블에서도 법무와 정책을 총괄했다. 이후 세금신고·환급 도움 서비스 ‘삼쩜삼’을 서비스하는 세무회계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로 옮겨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를 지내기도 했다.
한결같이 공동대표 내지 각자대표 가운데 한쪽은 게임 개발·서비스 등 기존 사업 확장과 새 사업 추진에 집중하고, 다른 쪽은 관리·지원과 대외를 총괄하는 방식으로 일을 나눠맡는 게 눈에 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쓰리엔의 경우, 임직원 수가 각각 5천명 안팎에 이르고, 개발·서비스 자회사 수가 늘어나는 등 몸집이 커졌다. 한명의 대표이사가 양쪽을 다 살피는 게 어렵다. 창업자 스스로 한계를 느껴 2인 대표이사 체제로 바꾸는 측면도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게임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법적 리스크가 증가하고, 사회와 소통 필요성이 커지는 등 게임 사업 환경이 변한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판교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 참석해, 게임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확률형 아이템 불완전 판매 피해자들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겠다는 말도 했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집단 소송에 나선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또한 오는 22일에는 국내 게임업체들이 주요 수익 모델로 채택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뽑기)을 규제하는 법도 시행된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게임업체 간 저작권 소송도 잦아지고, 대형화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게임 불완전 판매를 이유로 넥슨에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에서 보듯 정부 제재도 강화되고 있다”며 ”게임업체 쪽에서 보면, 그만큼 법적 리스크가 커지고, 또 정부 규제당국과 사회·이용자 등과의 소통 필요성도 커지는 것이다. 법률·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소송이 잦아지고,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국회 국정감사장 등에 불려가는 일도 잦을 것으로 예상해, 이런 대외 일을 전담할 ‘대표’를 따로 두는 모습이다.
포털 쪽은 여성 리더십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카카오는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에게 그룹협의체를 공동의장을 맡긴 데 이어 새 대표이사로도 선임한다. 카카오의 여성 대표이사 선임은 처음이다. 정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는 대법관 출신의 김소영 카카오 준법·신뢰위원회 위원장과 손발을 맞추며, 카카오를 창업 이후 최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는 동시에 계열사 재편을 뚝심 있게 이끌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네이버는 2017년 한성숙 대표에 이어 2022년 최수연 대표 선임으로 여성 리더십을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선 네이버 따라 하기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네이버는 회사 몸집이 커지고, 국회와 시민단체 등이 뉴스 서비스와 댓글 정책 등을 트집 잡아 최고경영자를 소환하는 일이 잦아지자, 2009년 판사 출신의 법률 전문가 김상헌씨를 영입해 대표이사를 맡겼다. 이후 관리와 대외 쪽은 김 대표가 총괄하고, 이해진 창업자는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검색 서비스 고도화, 신규 사업 발굴, 국외 시장 진출 등 사업에 주력했다. 김상헌 대표 후임으로는 한성숙 대표를 선임해 ‘꽃 프로젝트’(소상공인을 디지털화해 동반 성장)로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는 성과를 냈고, 이어 최수연 대표를 선임해 새로운 도약 기회를 찾고 있다.
네이버는 또 채선주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를 이에스지(ESG)·대외담당 대표로 선임해, 그동안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중동 정보기술(IT) 시장 개척에 앞장서고 있다. 최서희 네이버 상무는 “네이버 이용자 가운데 반이 여성이고, 소상공인 창업자 파트너 중에도 여성들이 많다. 네이버가 하는 사업의 특성상 디테일이 필요할 때가 많고, 고객과 파트너를 대할 때도 섬세함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네이버에는 유리천장이 없다는 것을 고객과 파트너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게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며 “이는 국외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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