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파는 데로 보여? 르세라핌 팝업스토어에 숨은 'IP 경제학'

조서영 기자 2024. 3. 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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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마켓분석
팝업스토어가 갖는 전략적 함의
공급 과잉 상태 엔터업계 1차 IP
2차 IP로 수익원 확보 나선 엔터
아티스트 없이도 수익 낼 수 있어

국내 엔터산업이 '매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앨범을 팔거나 콘서트 티켓값에 의존하던 과거와는 달라진 행보다. 엔터사가 점찍은 새 수익원은 '2차 지식재산권(IP)'이다. 2차 IP는 앨범·공연 등의 1차 IP를 바탕으로 창출할 수 있는 부차적인 상품을 말한다. MD(굿즈상품), 플랫폼, 영상 콘텐츠가 여기에 속한다. 하이브가 최근에 진행한 '르세라핌 팝업스토어' 행사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르세라핌의 팝업스토어 'LE SSERAFIM 2024 S/S POP UP'이 금호동에 열렸다.[사진=하이브제공]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 금호동. 2월 27일 이곳에 자리 잡은 복합문화공간 '알베르 금호'에선 특별한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K-팝 아티스트 '르세라핌'이 새 앨범 출시를 기념해 팝업스토어를 열었기 때문이다. 가수의 신보 행사는 으레 기자회견을 열거나 공연을 펼치는 게 전부인데, 르세라핌은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빌려 앨범 콘셉트를 알렸다.

르세라핌의 팝업스토어는 외관부터 눈에 띄었다. 건물 외벽 한면엔 르세라핌의 멤버 사쿠라의 대형 사진을 내걸었다. 사쿠라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인상 깊은 사진이었다. 이번 앨범 '이지' 트레일러에서 화제를 모은 하이라이트 장면이기도 했다.

팝업스토어 내부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해 잿빛을 띤 1층의 벽들 사이엔 후드집업, 트레이닝 바지, 짐색 등을 배치했다. 르세라핌의 '머치'였다. 머치는 하이브 레이블 아티스트 관련 공식상품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연결한 3개의 층 사이로는 소리가 울렸다. 2층 천장에 고정해 지하 1층까지 늘어뜨린 하얀색 '천'에는 르세라핌 멤버들의 영상을 미디어 아트로 띄웠다. 흥미로운 구성은 '동선動線'까지 이어졌다. 1층에서 구경한 머치를 2층에서 구매하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전시를 감상하는 동선이 아기자기했다.

동선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축축한 나뭇조각을 깔아놓은 바닥엔 덤불이 엉켜 있었다. 르세라핌 신보를 관통하는 메시지 '쉬워 보이게 만들자(Make it Look Easy)'를 시각적으로 꾸몄다.

하이브 관계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팬들이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쉬워 보이게 만드는 담대함, 여유를 갖길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면서 "지하 1층 전시 존에 조성한 축축하고 어두운 늪지, 진흙, 가시덩굴은 그들의 고민과 불안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봐도 르세라핌의 팝업스토어는 단순히 홍보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하이브가 이렇게 독특한 팝업스토어를 열어젖힌 까닭은 뭘까. 하이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기존 엔터업계는 아티스트와 음반, 음원, 공연 등 1차적인 지식재산권(IP)에서 주로 수익을 얻었는데, 매출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MD(굿즈상품)나 팬 플랫폼, 콘텐츠 사업 등 2차 IP 확장 전략인데, 팝업스토어를 여는 건 그 일환이다."

르세라핌 팝업스토어를 통해 K-팝의 전략적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건데, 그 배경을 하나씩 살펴보자. 국내 엔터사들은 그동안 소속 아티스트, 음반·음원만 IP(1차)로 여기고 관련 매출을 확대해 왔다. 엔터사들이 앨범을 많이 팔고 콘서트 티켓을 순식간에 매진시키는 유명 아티스트를 육성·배출하는 걸 지상목표로 삼아온 이유다.

이런 성장 전략은 2020년 팬데믹 국면이 열리면서 조금씩 한계를 드러냈다. 사회적 거리두기 확산으로 업계의 공연 수익이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하이브의 공연 매출은 팬데믹 전인 2019년 1910억원에서 팬데믹 직후인 2020년 34억원으로 90% 넘게 줄었다.

하이브 전체 매출에서 공연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2.5%에서 0.4%로 32.1%포인트 떨어졌다. 이런 문제는 최근 들어 심화했다. 지난해부터 음반과 음원·공연 등 1차 IP 시장 성장이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음반 판매량의 성장세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

특히 한중 관계가 얼어붙어 중국 시장의 앨범 공동구매가 축소해 예전과 같은 성장률을 기대하긴 어렵다. 올 1월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수출액은 454억여원으로, 전년(686억여원) 대비 33.9% 줄었다. 전체 음반 수출액에서 대중對中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22.1%에서 11.6%로 절반 수준이 됐다.

위기를 인지한 엔터사는 아티스트가 없어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2차 IP이고,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르세라핌 팝업스토어다.

실제로 르세라핌의 팝업스토어는 앨범 소개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르세라핌의 당당하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담은 다양한 MD도 판매하고 있다. 이미 르세라핌의 패션 MD는 인기몰이 중이다.

르세라핌이 꾸준히 보여준 '애슬레저 룩(운동복을 패션으로 연출한 룩)'과 '고프코어룩(아웃도어 의류를 캐주얼하게 연출한 룩)'은 K-팝 팬덤뿐만 아니라 패션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에게도 각광을 받고 있다. 르세라핌의 MD가 K-팝을 넘어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이브가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나나투어'는 TV와 팬 플랫폼 '위버스'에 동시 공개된다.[사진=하이브제공]

주목할 점은 '2차 IP'를 확보하려는 엔터사의 전략이 팝업스토어를 넘어 '예능 콘텐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브는 외부 제작사와 공동 투자·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나나투어'를 통해 2차 IP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티스트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역할만 해오던 엔터사들이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송출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 콘텐츠를 TV나 OTT에만 보내는 것도 아니다. 하이브는 '나나투어'를 TvN과 OTT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자체 팬 플랫폼(위버스)에 동시 공개했다. 비단 하이브만이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도 SM 3.0에서 2차 IP로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1차 IP 위주로 전개하던 사업을 2차 IP로 확대해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게 골자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그간 엔터사 실적을 좌우하는 건 아티스트의 활동이었고, 그렇다보니 거취나 사생활 같은 '아티스트 리스크'의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었다"면서 "2차 IP는 아티스트 본체가 없더라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류승희 삼정KPMG 선임연구원은 "제작사는 IP 초기 기획 단계부터 다른 분야로의 확대 및 재생산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기업은 개성 있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팝업, MD 개발 등을 통해 사용자 참여와 IP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K-엔터의 2차 IP 전략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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