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소탕작전’ 용어쓰고 “계엄군도 피해자”…4년 활동 5·18조사위 보고서 논란 왜?[뉴스분석]
지난해 12월26일 4년간의 조사 활동을 마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최근 공개한 조사결과 보고서를 두고 5·18단체와 광주 시민·사회단체에서 ‘부실 조사’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조사위는 핵심 사안으로 꼽혔던 발포 책임자와 암매장 의혹을 밝혀내지 못했다.
조사위는 또 기존 정부 조사와 법원 판결로 확정됐던 ‘전남지역 무기고 피습 시점’이나 ‘도청 앞 계엄군 장갑차 사망 사건’, ‘헬기사격’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기존 결과를 뒤집거나 왜곡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결과를 내놨다.
조사위는 보고서에서 5·18 당시 죽거나 다친 군인과 경찰 사건을 조사하면서 ‘도청 소탕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정부가 계엄군에게 수여됐던 훈장 등을 취소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적 화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기술했다.
경향신문은 12일 5·18조사위 보고서가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집단발포 이후 ‘무기고 피습’, 조사위는 “특정 못 해”
조사위는 1980년 5월 21일 전남지역 일원에서 발생한 무기고 피습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을 결정했다. 특히 조사위 보고서는 무기고가 피습된 시각에 대해 “확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조사위는 “당시 경찰관 등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 일부는 총기가 피탈된 시간이 ‘5월 21일 오전’이라고 여전히 진술하고 있고, 징계기록 등 배척하기 힘든 공적 서류에도 기록돼 있다”며 “특정 자료만을 인용하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무기고 피습 시각은 신군부와 5·18 왜곡 세력이 계엄군의 집단발포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해 왔다. 도청 앞 집단발포 전 시민들이 전남지역 경찰서 무기고를 습격,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이미 기존 정부 조사와 법원 판결로 허위로 확정됐다. 전남지방경찰청은 2017년 10월 5·18 당시 경찰 활동을 조사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 경찰의 역할 조사 결과>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경찰은 “(전남지역)무기고 피습은 오전이 아닌 오후 1시 30분 나주 남평지서에서 최초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일선 경찰서 기록과 근무자 증언, 내부 문건 등을 조사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오전 피습’의 근거로 사용된 당시 보안사 자료에 대해서는 “문서 제목과 글꼴이 당시 경찰이 사용하던 양식과 달라 조작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법원도 무기고 피습이 오후에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했다. 광주지법은 2018년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출판금지가처분 사건에서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이전부터 시민들이 경찰서를 습격해 무장하고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 허위라고 판단하고 삭제하도록 했다.
■계엄군 장갑차에 숨진 병사, “진상규명 불능”
5·18 왜곡 세력들이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자위권 차원’ 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내세웠던 ‘계엄군 장갑차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위는 기존 법원 판단을 뒤집었다.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는 집단 발포 직전 11공수 소속 병사가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 이를 두고 5·18 왜곡 세력과 신군부는 “시민군의 장갑차가 계엄군을 치어 숨지게 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계엄군들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계엄군을 치어 숨지게 한 장갑차는 시민들이 몰던 장갑차가 아니라 계엄군 장갑차인 것으로 결론 냈다. 광주고법은 2022년 9월 <전두환 회고록> 재판에서 이 사건에 대해 “계엄군 장갑차의 후진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판결하며 회고록에서 해당 내용의 삭제를 명령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조사위는 “시위대 장갑차에 치어 사망하였다는 진술과 후진하던 계엄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하였다는 진술이 상존하고 있다”면서 “정확한 사인을 특정할 수 없고 기록조사, 목격자 등 참고인에 대한 대인조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하지 못해 진상규명불능으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전두환 회고록> 재판에서 5·18단체 쪽 변호를 맡았던 김정호 변호사는 “조사위가 가장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법원의 판결문조차도 존중하지 않고 조사보고서에 판결문의 판단과 다른 사실을 기재한 부분은 합리성이 결여돼 부당하다”고 밝혔다.
■명확했던 헬기 사격, “직접증거 확인 못 해” 기술
기존 정부 조사와 법원 판결로 명확했던 ‘5·18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에 대해서도 조사위는 보고서에서 ‘왜곡’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조사위는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진상규명’을 결정했지만 보고서에 “직접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논란을 자초했다.
조사위는 ‘군에 의한 헬기사격 사건 위원회 조사 결론’ 첫 문단에 “위원회는 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출동한 육군 헬기가 시민군을 향해 사격하였다는 육군항공의 지휘관, 조종사, 정비사, 무장사, 승무원의 직접적인 증언이나 사격 실행에 관한 문서 등의 직접적인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5·18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은 정부 조사와 법원 판결로 이미 확정된 사실이다. 2018년 2월 헬기사격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5월21일부터 5월27일까지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도청앞 전일빌딩 10층에서 발견된 수백 개의 탄흔에 대해 “호버링(정지) 상태의 헬기에서 발사된 것이 유력하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법도 “도청 앞 전일빌딩 내에서 발견된 탄흔이 헬기 사격 이외에 다른 가능성 상정할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며 헬기사격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조사위는 ‘헬기사격은 있었지만 직접증거는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조사위가 5·18왜곡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도청 소탕작전’ 표기하며 “계엄군도 피해자”
조사위가 계엄군과 경찰의 피해 상황을 조사해 내놓은 보고서도 논란이다. 이 보고서에서 조사위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계엄군의 유혈진압을 ‘소탕작전’ 이라고 표기했다.
조사위는 계엄군의 도청 진압 작전을 조사하며 이 사건 조사 목차를 ‘도청 소탕작전’ 이라고 썼다. 5·18이후 진행된 계엄군의 무등산 수색 작전에 대해서도 ‘무등산 소탕작전’ 이라고 명명했다. 광주 시민들을 ‘죄다 없애 버려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조사위는 또 계엄군 사망자와 중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오인사격’ 사건에 대해 명확하지 설명하지 않았다. 5월24일 계엄군은 광주공항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부대 간 오인사격으로 인해 10명이 숨지고 51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동안 ‘송암동 오인사격’ 알려진 이 사건에 대해 조사위는 ‘K-57 철수작전’ 이라고 표기했다. ‘K-57’은 당시 공군 광주비행장을 지칭한다.이같은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계엄군 간의 오인사격은 감춰지고 군인들이 정상적인 작전을 진행하다 사상을 입은 것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크다.
조사위는 지난 정부에서 조작된 공적조서 등으로 계엄군에게 수여된 5·18진압작전 관련 훈장 등을 박탈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보고서는 “포상 및 보상을 받은 이후에도 과거 정권에 따라 서훈이 취소되거나 박탈되는 경우가 발생함으로써 국민적 화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또 “조사를 진행하면서 계엄군은 가해자, 광주시민은 피해자라는 흑백논리가 만연해 있고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대해 폭력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조사위의 이같은 시각에 대해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5·18 조사위 비상임위원인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일부 보고서는 5·18 진상규명을 30∼40년 후퇴시켰다. 신군부의 시각으로 작성된 보고서는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면서 “보고서를 폐기하려고 했지만 좌절됐다. 이런 일을 막지 못해 참담하다”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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