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PD가 밝힌 '두 팀 다 내 팀 같은' 축구 예능 성공 공식
[여성의 날 인터뷰] SBS 스포츠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김화정 PD
'우습지 않고 재밌는' 여성 축구 '골때녀'를 위한 제작진의 노력
선수들의 진정성 속 모두가 주인공인 골때녀 "시청자들에게 용기"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우리 편'과 '남의 편'만 있는 대결이 아닌, '두 팀 다 내 팀 같은' 스포츠 경기가 있다. 각 분야의 여성들이 축구 경기를 펼치는 SBS 스포츠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다. 골때녀 속 축구는 경쟁적이고 거친 스포츠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 선수들이 보여주는 진정성과 유대감은 축구가 '끈끈한 연대를 가져올 수 있는 스포츠'라는 점을 알렸다.
골때녀는 예능이란 통로를 통해 여성 축구의 장벽을 낮췄다. 지난해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을 수상하는 등 대표적인 '성평등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골때녀 메인 연출을 맡은 김화정 PD(SBS스튜디오프리즘)는 “사람들이 골때녀를 보며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두 팀 중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라며 “내 팀은 이기고 다른 팀은 졌으면 좋겠다는 이분법적 생각이 아니라 골때녀 11팀을 모두 소중히 여기고 좋아해주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보면 감사하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3·8 세계 여성의날 주간을 맞아 지난 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김 PD를 만났다.
'우습지 않고 재밌는' 골때녀를 위한 제작진의 노력
골때녀가 만들어진 계기는 거창하지 않다. 과거 SBS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진행한 여성 축구 경기가 계기가 됐고, '이렇게 재밌는 팀 스포츠, 여성도 즐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김 PD는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예능 PD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아이템을 고민하다 시작했다”며 “불타는 청춘에 출연한 분들이 골때녀에 한 팀으로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초반엔 '여자들 너무 못하지 않아?'라는 식으로 축구하는 여성들을 '우습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우습지 않고 재밌게' 보일 수 있도록 편집에 공들였다. 김 PD는 “편집은 예능적이기보다 스포츠 경기에 입각해 작업하면서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들은 자연스레 살렸다”며 “우습게 보이는 것에서 그쳤다면 프로그램의 확장성은 없었을 거다. 못하는 게 웃길 순 있지만 이 안에서 나오는 진정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함부로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선수들의 발전과 성장을 좋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1년 6월 총 네 팀으로 시작한 경기엔 현재 총 11팀, 66명의 선수들이 뛰고 있다. 초반엔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모델, 개그맨 등 연예인 직업군별로 선수를 섭외했다. 여성에게 축구는 낯선 스포츠였지만, 하나의 게임을 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기에 섭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경기력이 눈에 띄게 발전한 지금, 신규 선수 섭외가 제작진에게 큰 고민이 됐다.
김 PD는 “초창기엔 국내 연예계에서 축구를 해본 사람이 없으니까 예능 문법대로 서로 구분이 명확하게 될 수 있는 집단으로 나눠서 팀을 꾸릴 수 있었다”며 “지금은 프로그램이 4년 차에 접어들고 축구 실력 또한 '어마무시'하게 발전했기 때문에 섭외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풀(pool) 안에서 실력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 골때녀 선수들만큼 잘하는 여자 연예인들을 그냥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프로그램 목적인 '누구나 할 수 있는 축구'엔 부합하지만 역설적으로 못하는 사람이 잘하는 풀에 들어오면 벤치 멤버로서 별로 기능할 수 없는 상황이니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고민을 계속 하고있다”고 했다.
그래도 제작진은 꾸준히 새로운 선수를 위한 오디션을 보고 있다. 오디션에선 기본 체력, 유연성, 움직임 등을 확인하고 마지막엔 제작진과 함께 연습 경기도 뛴다. 김 PD는 “우리 프로그램 때문에 축구를 본업 이상으로 하는 출연진들이 있다. 중간에 돌아가겠다고 하면 보내드렸다가 축구가 그리워지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한다”며 “신규 선수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을 찾긴 쉽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에겐 추후 연락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려놓고 인큐베이팅을 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어 “서로 의무는 없지만, 축구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있기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실제로 준비를 해서 다시 오디션을 보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축구를 잘 몰랐던 제작진도 이젠 실제 축구 경기를 뛴다. 골때녀 촬영에서 멤버들의 연습 상대도 제작진이다. 김 PD는 “지금은 자발적으로 축구를 한다”며 “경기가 있을 때 같이 모여서 보러가기도 하고 제작진 내부에서 축구팀도 만들었다”고 했다. 김 PD는 “나는 어릴 적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며 축구부에 들어가려 시도했으나 실력 미달로 들어가지 못 했다”며 “지금은 취미로나마 축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선수들의 진정성 속 모두가 주인공인 골때녀
사람들이 골때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선수들 모두 노력하는 진심이 느껴져서다. 때문에 '예능이 아니라 다큐같다'는 평가도 많다. 유독 골때녀에서 여성 선수들의 진정성이 돋보이고, 사람들에게 와닿는 이유는 뭘까.
김 PD는 “여성 출연자들이 팀 스포츠를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감독님이 승패에 대한 희비가 극단적이라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신 적 있다”며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이기면 7정도 좋아하고 지면 마이너스 6으로 기분이 다운되는데, 우리 선수들은 100까지 올라갔다가 마이너스 100까지 떨어진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승패에 대한 희비를 처음 경험해보는 여성들의 도화지 같은 마음, 내가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 우리 팀의 명예가 걸려있다는 마음 때문에 여성 출연자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뛰는 것 같다”며 “제작진은 안전한 경기 외에 주문한 게 없었다”고 했다.
실력과 관계없이 경기장 위에서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골때녀의 인기 비결이다. 김 PD는 “스포츠로는 잘하는 사람만 보이는 게 맞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자 프로 축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며 “많은 여성 대중이 골때녀를 보고 축구를 시작한 것도 '못해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 지점이 크다”고 했다. 이어 “만약 지금 이 경기력을 파일럿에서 선보였다고 하면 골때녀를 보고 축구를 시작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라며 “처음에 보여줬던 모습들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축구를 시작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과 올해 초 설 명절 파일럿으로 방영한 스핀오프 프로그램 '골림픽'에서도 선수 개개인을 주목하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컨셉으로 골때녀 선수들과 함께 달리기, 수영, 피구 등을 하는 프로그램에선 축구에선 돋보이지 않았던 개개인 선수들의 실력이 눈에 띈다. 진지한 분위기의 골때녀와는 달리 축제같은 분위기도 느껴진다.
최근 현장에서 관중들과 호흡하며 경기를 진행한 '챔피언 매치'도 김 PD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김 PD는 “당일에 오는 관중과 선수의 호흡을 연출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현장에 온 분들이 열정 넘치게 각각 팀을 응원해서 성공적으로 끝냈다”며 “선수들도 유례없는 경험을 했다고 너무 좋아했다”고 말했다.
보다 성평등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은 여성 선수들을 감독으로 기용하고, 여성 주심을 섭외하는 등의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김 PD는 “여성 캐스터가 거의 없으니까 여성 해설이나 캐스터를 이벤트적으로 섭외해보자는 의견이 내부에서 있다”며 “유니폼도 라인이 있는 유니폼을 제작할 필요 없이 운동하기 좋은 편한 유니폼을 제작해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4년차 맞은 골때녀,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은 '지속가능성'
어느덧 프로그램 제작 4년차를 맞은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은 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이다. 새로운 선수 섭외가 갈수록 쉽지 않은 데다, 예능적 컨셉으로 연예인들을 특정 집단으로 나눴기 때문에 실력과 별개로 팀을 구성해야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김 PD는 “계속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는 고민은 있다”며 “새로운 선수를 충원해야 하는데, 실력과 팀의 필요에 따라 선수를 이동시키는 프로축구와 달리 애초에 연예인들을 '개그맨들 한 팀'이란 식으로 특정 집단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프로그램 연차가 생각보다 오래되면서 모순적인 상황이 된 것이 제작진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한 고민도 있다. 김 PD는 “경기를 더 잘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경기력 외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지 고민”이라며 “축구라는 도전에 있어서 선수들이 계속 벽을 깨부수면서 해왔지만 이들이 과연 어디까지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두 의문을 갖고 있다. 여자 프로축구 선수처럼 뛰는 모습이 나올 때까지 해야 하는지, 다른 미션으로 도전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PD는 남성의 오랜 전유물로 여겨진 축구를 골때녀가 타파함으로써 예능 프로그램도 성평등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이색적으로 느껴져도 매주 방송을 보면 '여자들이 축구할 수도 있지'라고 느끼는 것처럼, 예능을 통해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일상 속으로 알게 모르게 스며들게 하는 게 가장 좋은 점”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에 대한 이슈가 과도기인 시점에서 올바른 방향성을 과격하지 않게 제시해줄 수 있는 게 예능”이라고 말했다.
김 PD는 “축구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봤다고 받아들이는 출연자도 많다”며 “여자 축구는 한국에서 거의 불모지인 상황이었는데 이젠 여성 축구 대회도 많이 시키고, 혼성팀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넘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제작진 모두가 보람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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