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는 바퀴벌레, 충치” 충격발언에도 추앙 받으며 떠난 나발니…이승만도 제대로 평가 받아야 마땅 [매경포럼]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3. 1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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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0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동상 앞에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사망한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지난 1일 그가 생전 살았던 모스크바의 한 마을 교회에서 치러졌다. 러시아 당국은 장례식은 허용했지만 “허가되지 않은 다른 모든 집회는 위법”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서방 국가들은 나발니를 러시아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순교자로 간주하며 추모 분위기가 거세다. 서방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대립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드는데 이만한 호재도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나발니 사망 직후 복수를 대신 해주려는 듯 러시아를 상대로 500여 개 추가 제재안을 내놓은 것도 ‘푸틴 옥죄기’ 일환이다. 나발니 부인과 딸까지 백악관으로 초청해 위로한 것은 푸틴을 겨냥한 의도된 행위가 분명하다.

하지만 니발니가 집권했다면 러시아를 민주주의로 이끌고, 서방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에 대해선 그의 생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적 특성과 관련되고, 다른 이유는 러시아 정치문화적 측면에서다.

나발니 그늘1…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지지
나발니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러시아 주변 국가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숱하게 해왔다. 이들 나라 매체들이 나발니의 존재와 죽음을 서방 세계만큼 크게 다루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발니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 “당연하다”는 투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나발니는 그해 10월 러시아 시사 라디오 채널인 ‘에코 모스크비(Ekho Moskvy)’에 나와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으로 남을 것이고, 가까운 장래에 우크라이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반환할텐가’라는 질문에는 “크림반도는 가져갔다가 돌려줄 수 있는 샌드위치가 아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러시아인 어머니와 우크라이나인 아버지를 둔 나발니조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영토 확장을 편드는 모습에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좌절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염원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지지하지 않았고, 크림 합병 전에도 그 곳은 러시아 해군기지로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방에서 나발니 사망을 애도하는 물결이 한창일 때도 우크라이나인들 심경이 복잡했던 이유다. 런던 킹스 칼리지의 제이드 맥글린 박사는 “나발니는 과거 극우 민족단체 행사에 참석하곤 했다”며 “그를 이상적인 자유민주주의자로 보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나발니 그늘2…민족차별·인종혐오 발언들
나발니는 2008년 8월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을 지지하면서 빈축을 샀다. 그는 쥐나 햄스터 같은 설치류와 조지아 사람들을 뜻하는 러시아어 ‘그루지늬’ 발음이 비슷한 점을 들어 조지아인을 ‘설치류’로 불렀다. 그는 무슬림 이민자를 ‘바퀴벌레’라고 칭했고, 한 영상에서는 치과 의사 복장을 하고 나와 이민자들을 러시아 땅에서 제거해야 할 ‘충치’로 비유했다. 그는 조지아인 비하 발언을 이후 사과했지만 조지아 전쟁의 정당성은 끝까지 옹호했다.

국제엠네스티는 2021년 2월 나발니의 충치 영상 등 인종차별·혐오 논란이 커지자 그에 대한 ‘양심수’ 지정을 잠시 철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이를 기회로 나발니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자 3개월여 만에 “잘못된 결정이었다”며 양심수로 재지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해 5월 미국 조지타운대학 측이 졸업식 외부 연사로 나발니 딸을 초청키로 하자 학생들은 반발했다.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에서 민족 차별과 인종 혐오적 발언을 한 나발니 가족의 연설을 듣기 싫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반푸틴 성향 인사가 반드시 친민주와 반전, 자유주의 지도자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행사는 다른 2명의 연사를 함께 초청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나발니 그늘3…큰 씀씀이에 자금 출처 의혹도
고인에 대해선 다른 부정적인 얘기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나발니의 자금 출처다. 일정 직업도 없고 큰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나발니의 씀씀이가 크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고급 아파트에서 살며 딸은 학비가 비싼 미국 스탠포드대학에 다니는 것을 놓고 인터넷에는 의혹이 떠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기부금에 대한 사적 유용 가능성도 제기돼왔다. 크렘린 비호를 받는 재벌이 건넨 ‘더러운’ 후원금을 받거나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다. 러시아에 있는 서방 대사관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아 반(反)푸틴 활동에 썼다는 비난도 있다. 나발니가 외국 돈을 받아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라는 것이다.
나발니 그늘4…진짜 서방이 원하는 민주적 인물일까
나발니가 집권했더라도 러시아를 민주주의로 이끌기는 힘들었다고 보는 또다른 배경에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러시아 정치문화가 있다. 러시아는 근대 이후 발전된 유럽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그들의 무시를 받으면서 서방에 대한 반감을 키워왔다. 힘이 약해지면 서방에 굴복당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컸다. 이에 러시아는 유럽과 다르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국이라는 특별함을 강조해왔다.

푸틴의 대외사상적 멘토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명저 ‘지정학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에 나온 강대국 논리를 야당 지도자들도 속으로는 공감한다. 두긴 사상 요지는 러시아가 냉전 시대 위상을 되찾고 무시 받지 않으려면 소련 제국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틴 역시 2000년 부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협력했지만 유가 급등과 사회 안정으로 힘을 되찾자 마각을 드러냈다. 그 기점이 미국 일방주의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2007년 2월 뮌헨안보회의였다. 권력을 잡은 나발니도 처음엔 미국과 협조해 본인 위상을 구축한 뒤 미국 간섭과 독주가 지나치다고 판단하는 순간 푸틴과 같은 길로 갔을지 모른다. 마리아 포포바 캐나다 맥길대 교수는 “나발니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반대했지만 러시아 제국주의는 비난하지 않았다”고 했다.

푸틴 독재 견제와 저항정신 인정해야
지난 달 20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동상 앞에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나발니에게는 칭찬할 점이 더 많다. 서슬퍼런 푸틴 체제에 맞서 죽을 때까지 비판과 견제자로 남는 것은 쉽지 않다. 푸틴 장기 독재와 부패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린 것도 그의 공로다. 4년 전 독극물 ‘노비촉’에 중독돼 독일에서 치료받고 살아난 뒤 망명 대신 러시아행을 택한 것은 사자굴로 들어간 것이었다. 비상한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러시아 입국 직후 외진 감옥에 수감돼 고초 속에서 죽었다.

푸틴에 대한 견제가 유명무실한 러시아에서 나발니는 그 역할을 힘겹게 해냈다. 조국의 변화를 위한 투쟁과 헌신이 몇 가지 사소한 일 때문에 가려질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지난해 2월, 전쟁 1년을 맞아 15개항 선언문 발표로 과거 잘못을 씻어내려 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군 철수와 배상금 제공, 전쟁범죄 조사 촉구, 우크라이나인들의 평화 정착 지원 등을 강조했다.

이승만 평가도 功過 따져야…작은 일로 큰 업적 폄하 안돼
영화 ‘건국전쟁’이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서울 시내 영화 상영관 모습 [사진출처 = 연합뉴스]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한 ‘건국전쟁’을 계기로 이승만 전 대통령 평가가 한창이다. 영화는 그가 철저한 반공정신과 애국심으로 자유 대한을 지켜낸 과정이 주를 이룬다. 1945년 해방 이후 농지개혁법 제정을 통해 국민의 토지 소유를 늘려 자본주의 기초를 놓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 파병을 이끌어내 나라를 살렸다. 종전 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북한의 남침 재발을 막은 것도 그의 치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의 기반을 쌓은 큰 업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몇 가지 행적을 꼬투리잡아 이 전 대통령의 업적 전체를 깍아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나 긴 인생을 살면서 공과(功過)가 있는 법이다. 나발니나 이승만 모두 ‘뭐가 가장 중헌디’에 초점을 맞춰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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