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음 없어도 달콤한 ‘데일리 스포츠카’ EV6 GT[김준의 이 차 어때?]

김준 기자 2024. 3. 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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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음이 좋을 것.’

매력적인 스포츠카의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다. 모름지기 스포츠카는 빠르기만 해서는 안되며, 우아하고 달콤한 사운드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자동차 애호가들 중에는 아직도 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되는 주장이다.

EV6 GT는 다른 고성능차보다 최저지상고가 높아 과속방지턱 등을 무난히 넘을 수 있다. 기아 제공

페라리나 포르쉐 배기음은 음악이다. 포드 머스탱의 5ℓ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쏟아내는 저음은 바리톤 성악가의 목소리만큼 매력적이다.

이 같은 ‘룰’이 전기차가 보급되면서 단박에 깨졌다. 엔진음이나 배기음을 전혀 내지 않고도 시속 300㎞로 치닫는 고성능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산 고성능 전기차의 선두 주자는 단연 기아 EV6 GT다. 무엇보다 퍼포먼스가 무서울 정도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585마력과 75.5kg·m. 5ℓ급 가솔린 엔진에 트윈터보는 달아야 얻을 수 있는 파워다.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인 ‘제로백’은 더 놀랍다. 3.5초. 내연기관 시대에서는 ‘슈퍼카’나 낼 수 있는 눈부신 기록이다.

길에 나선 EV6 GT는 초원의 맹수다. 소리 없이 질주하고 나비처럼 꺾어 코너를 잡아 먹는다. 저 만치 앞서가는 독일제 스포츠 세단이 눈 한번 깜빡하는 사이에 EV6 GT 뒤로 사라진다. 이만하면 공도에서는 따라잡지 못할 차가 거의 없다.

때문에, 과격한 액셀러레이터 사용은 금지다. 오른발에 살짝만 힘을 줘도 시트가 등짝을 때리며 전방으로 튀어나간다. ‘폭발적 가속력’이란 촌스런 표현이 딱 들어 맞다. 얼떨결에 눈이 간 윈드실드 속 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생각지도 못한 속도가 떠있어 놀란다.

EV6 GT 콕핏(위쪽 사진)과 시트. EV6 GT는 버킷시트를 사용해 코너링 시에도 몸을 잘 잡아준다. 기아 제공

EV6 GT는 4륜구동이다. 4바퀴가 도로를 움켜 잡으니 빠른 코너링도 덜 부담스럽다. 깊은 코너를, 급하게 빠져 나와도 몸 쏠림이 미미하다. 제법 잘 만든 버킷 시트가 운전자를 단단히 받쳐준다.

광포하게 달리고, 돌고, 멈춰 봤지만 EV6 GT는 고요하기만 하다.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사라진 스포츠카는 운전자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배기음의 달콤함에서 빠져나오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다.

‘배기음 중독자’를 위한 배려가 없지는 않다. 액티브 사운드 시스템이다. 하지만 마세라티류의 배기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웅웅거릴 뿐, 잘 만들어진 엔진과 머플러에서 나오는 사운드는 아니다. 오프!

자동차도 비오는 날엔 글루미해지는가.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선 EV6 GT는 묵언수행 수도승이 기거하는 사찰처럼 차분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주디 콜린스의 ‘Send In the Clowns’.

카랑하지만 촉촉한 목소리가 여과 없이 귓속으로 파고 든다. 메리디안이 빚어내는 소리는 과거 이 브랜드의 가정용 오디오 음감 만큼 매력적이다.

그녀의 목소리에 홀려서인지 기아 EV6 GT처럼 소리없이 질주하는 고성능 전기차가 ‘데일리 스포츠카’ 로 더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듣기 좋은 배기음도 출퇴근 정체 때엔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독’이 되니까.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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