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범죄 일어나면 ‘이렇게’ 혈흔 분석한다

이정호 기자 2024. 3. 1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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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연구진, 미세중력 환경서 혈액 비산 실험
중력 영향 없어 포물선 운동 없이 날아가
표면장력 영향 커지면서 혈액 퍼지는 힘 감소
영국 연구진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안에서 미세중력 환경을 만든 뒤 인공 혈액을 뿌려 혈흔을 만들고 있다. 영국 스태포드셔대 제공

#가까운 미래의 달 표면. 월면차 3대가 대형 기지에서 나와 주행을 시작한다. 월면차에는 공무차 출장에 나선 미국 육군 로이 맥브라이드 소령(브래드 피트 분) 일행이 타고 있다.

그런데 기지를 떠난 지 얼마 안 돼 또 다른 월면차들이 이들에게 빠르게 접근한다. ‘우주 해적’이다. 달은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기 때문에 치안력이 구현되지 못해 생긴 세력이다. 우주 해적들은 레이저 총을 쏘아대며 맥브라이드 소령 일행을 공격한다.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이다.

인간의 지구 밖 진출이 본격화하면 이 영화에서처럼 ‘우주 범죄’ 역시 비일비재할 가능성이 크다. 범죄 중 일부는 사망자를 만들 것이고, 용의자가 불분명한 상황도 있을 것이다. 사망자가 피를 흘렸다면 경찰 등 사법 당국은 주변의 혈흔을 확인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지구 밖, 즉 우주에서라면 혈흔 분석 방식이 달라야 한다. 혈흔은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영국 스태포드셔대 연구진은 1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포렌식 사이언스 인터내셔널’을 통해 지구 궤도에서 나타나는 아주 작은 중력, 즉 ‘미세중력’에서 혈흔이 어떤 모양을 띠는지 분석해 발표했다.

지구 궤도는 우주공간으로 간주되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미세중력은 지구 표면의 100만분의 1이다. 사실상 무중력이다. 현재 미세중력을 상시 체험할 수 있는 인공 구조물은 지구 상공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다.

연구진 실험은 보잉 727기를 개조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안에서 이뤄졌다. 항공기는 비행 중 지상을 향해 빠르게 급강하하며 지구 중력을 상쇄했고, 이를 통해 우주공간 같은 미세중력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급강하하는 항공기 안에서 글리세린과 빨간 식용 색소를 섞어 만든 인공 혈액 1㏄를 주사기를 통해 하얀 종이로 쐈다. 발사 거리는 20㎝였다. 이 실험에서 지구 표면에서와는 다른 2가지 특징이 확인됐다.

하나는 주사기를 떠난 혈액이 흔들림 없는 직선 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급강하하는 항공기 안에서 20㎝를 날아가는 동안 혈액이 아래로 처지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물체를 당기는 지구 중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지구 표면에서는 다르다. 우선 주사기에서 발사된 혈액이 중력 때문에 포물선을 그리며 난다. 게다가 혈액이 방 안 벽에 닿았다면 역시 중력 때문에 아래로 흘러내린다. 이때 생긴 혈흔을 보고 경찰은 피해자가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가격 당했는지 등을 가늠한다. 하지만 우주에서라면 지구 표면에서 통했던 이런 상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중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나타난 또 다른 차이점은 혈액이 퍼지는 모양이었다. 연구진이 급강하하는 항공기 안에서 하얀 종이에 뿌린 혈액 모양을 보니 지표면에서 발사된 혈액보다 퍼지는 정도가 훨씬 덜했다.

중력이 제거된 곳에서는 액체 방울, 즉 혈액을 통제하는 힘은 ‘표면장력’만 남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표면장력이 강할수록 액체 방울은 흐트러지지 않고 최대한 자신의 동그란 모양새를 단단히 지킬 수 있다. 우주에선 범죄 뒤 혈흔이 사방에 흩뿌려지는 정도가 지구보다 훨씬 덜할 것이라는 뜻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혈흔 패턴을 분석하는 전통적인 공식은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우주 개척 시대에 대비한 법의학 기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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