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ETF 들끓자 금감원 칼 뺐다… 소규모 펀드 청소 시작

문수빈 기자 2024. 3. 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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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ETF 1개당 평균 AUM 3조
韓은 0.1조로 美의 1/20 수준
10개 중 1개는 상폐 요건 충족

‘MSCI모멘텀, MSCI밸류, MSCI퀄리티…’

한 자산운용사가 상장지수펀드(ETF)를 초세분화해 내놓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기로 했다. 유명무실한 상장폐지 요건을 수정해 ETF 퇴출을 독려하고, 비슷한 ETF끼리 합치는 안이 고려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ETF와 관련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유동성공급자), 한국거래소와 논의한 후 제도 개선에 착수할 계획이다. 투자자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진단한 후 개편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제도 개선의 한 방향이 소규모 ETF 정리다. 증권업계 안팎에서 시장 규모에 비해 ETF 개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조치다.

선진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의 상장 ETF는 10일(현지 시각) 기준 3360개로, 순자산총액(AUM)은 8조6500만달러(약 1경1343조원)에 달한다. ETF의 평균 AUM은 3조3758억원이다. 반면 한국 ETF는 841개로 AUM은 134조원이다. 이에 따른 평균 AUM은 1593억원으로,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공모펀드가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자 미래 먹거리는 ETF뿐이라고 생각한 자산운용사들이 상품을 마구 출시한 결과다. ETF가 많다는 건 투자자가 투자 영역을 보다 세밀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관리가 되지 않는 ETF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게 단점이다.

이는 괴리율만 봐도 알 수 있다. 괴리율이란 시장에서 거래되는 ETF의 가격과 실제 ETF 안에 담긴 주식 등의 가격(공정 가격) 차이를 뜻한다. 0에 가까울수록 ETF가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다. 괴리율은 자산운용사가 해당 ETF를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AUM 상위 5개 ETF의 괴리율은 마이너스(–)0.02%였으나, 하위 5개(거래 정지된 ACE 러시아MSCI 제외)는 –0.43%였다. AUM 상위 5개와 하위 5개의 괴리율이 20배 차이 나는 것이다. 하위 5개 ETF는 기초지수 가격을 상대적으로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번 투자하면 만기 때까지 자금을 뺄 수 없는 폐쇄형 펀드와 달리 ETF는 한국거래소에 상장해 있어 현금화가 간단하다. 규모가 작아 자산운용사가 방치하는 ETF라고 느껴지면 투자자는 언제든 팔고 나오면 된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나서서 소규모 펀드를 정리하려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투자자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아 원래도 거래가 원활하지 않은데, ETF를 팔려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 주문을 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 전경/뉴스1

금융당국은 2년 전에도 방치되는 소규모 펀드 정리를 추진한 바 있다. 투자자의 관심이 저조한 펀드를 정리해 자산운용사가 다수의 투자자가 가입한 펀드에 운용 역량을 집중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펀드 출시 후 판매가 저조해 규모가 줄어들면 운용이 방치돼 펀드 수익률이 저조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운용 펀드 중 소규모 펀드(설정 1년 경과한 펀드 중 설정 원본액 50억원 미만) 비율이 5%를 넘으면 신규 펀드 출시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올해도 금감원이 업무 계획으로 소규모 펀드 정리를 꼽을 만큼 대책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ETF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상장된 ETF 10개 중 1개는 당장 상장폐지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상 순자산총액(AUM)이 50억원 미만인 ETF는 상폐할 수 있는데, 전체 841개 중 76개의 AUM이 50억원 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ETF가 상폐되지 않고 계속 시장에서 유통되는 건 법이 ‘상폐를 해야 한다’가 아닌, ‘상폐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서다.

금감원은 상폐 요건 정비, 제반 운용 개선, ETF 합병 등 다양한 방안을 염두에 두고 업계와 논의해 대안을 찾을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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