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명학(學)’ 잇는 ‘이재명 우상화’[김지현의 정치언락]
최근 서울 도봉갑에 전략 공천된 안귀령 대변인은 지난해 2월 동아일보 유튜브에서 ‘외모 이상형 월드컵’을 하던 중 ‘이재명 대 문재인’, ‘이재명 대 조국’을 묻는 질문에 모두 “이재명”이라고 답했습니다. 배우 ‘차은우 대 이재명’에서조차 이재명을 선택한 안 대변인에게 진행하던 기자들마저 “차은우는 아니지!”라고 경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더군요.
‘차은우의 난’을 시작으로 민주당 내 ‘이재명 찬양’은 계속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하는 후보들일수록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을 공략할 수 있는 발언에 더 신경이 쓰이겠죠.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경기 수원정 경선에서 원내대표 출신 3선 현역 박광온 의원을 꺾고 본선행에 오른 김준혁 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의 ‘소나무’ 발언입니다. 그는 2021년 12월 21일 자신의 유튜브에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의 경북 안동 생가를 방문했던 경험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완전히 다 쓰러져가는 집이고, 검은색 비닐하우스가 있거든요. 그 비닐하우스 앞에 200년 넘은 큰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소나무의 기운이 이재명한테 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막 드는 거야.”
정조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역사학자로, 한신대 부교수로 재직 중인 김 부위원장은 이 대표가 대선 후보이던 2021년 8월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라는 책도 출간했었죠. 정조가 이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에서 그는 이 대표와 정조의 리더십을 비교하며 “개혁이란 공통의 열망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더군요. 김 부위원장은 당시 유튜브에서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이 후보가 잔잔한 톤으로 ‘억강부약(抑强扶弱)’ ‘대동세상(大同世上)’을 말할 때 흥분됐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최근, 이 내용을 공유하며 “역시 이 대표에게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재명은 시대정신이자 손흥민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 대표를 손흥민에게 빗댔습니다. 그는 지난달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으로 깃발과 상징이 계승됐다. 축구로 치면 차범근 황선홍 박지성 손흥민으로 깃발이 계승된 것과 같다”고 했죠. 최근 이어지는 민주당 공천 논란과 관련해 축구팬들이 현재 국가대표 주장인 손흥민 선수를 지지하듯 민주당도 현재 당 대표인 이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겁니다. 역시 지지층은 열광했습니다. 이 대표 팬카페에는 “역시 월클(월드클래스)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다” “한국팀의 승리를 위한 주장 손흥민의 마음, 민주당의 승리를 위한 당 대표 이재명의 마음” 등의 옹호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같은 ‘이재명 우상화’ 작업이 위태로워 보이는 건 민주당엔 비슷한 전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열공하던 ‘재명학’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당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이재명 알리기’ 운동을 시작했고, 당 홍보 소통본부는 각 시·도당위원회에 ‘왜 이재명인가’라는 제목의 핵심 당원 교육용 자료를 배포하기까지 했죠.
정청래 의원은 이 책을 흐느끼며 읽었다죠. 그는 페이스북에 “인간 이재명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토록 처절한 서사가 있을까? 이토록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가 또 있을까? 유능한 소설가라도 이 같은 삶을 엮어낼 수 있을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고 했습니다. 정 의원은 그 다음 전당대회에서 수석 최고위원이 됐고, 이번에도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에 단수 공천을 받았습니다. 이해식 의원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다’고 썼습니다. 그도 이번에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강동을에 단수공천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양극단 정치 문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대선 당시 끝내 독후감 릴레이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 의원은 “우리 당이 맨날 검찰독재라고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면서 우리는 더 심한 충성경쟁을 종교처럼 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들이 바라볼 땐 누가 더 한심해 보이겠냐. 특정 개인에 대한 찬양과 미화는 우리 당이 더 심한 것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경선까지는 당원 입김이 중요할 지 모르겠지만, 본선에선 국민 마음을 사야 하는데, 이재명 우상화가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빠는 내 뒤에 있어” 25살 러시아 아내, 새벽배송으로 암 투병 남편 지켜
- 문준용, ‘특혜취업 의혹제기’ 국민의당 손배소 승소 확정
- 한밤중 시진핑 관저에 초유의 차량 돌진…“공산당이 사람 죽여” 고함
- 학폭 호소하다 극단 선택한 초6 여학생…가해자는 전학
- 대낮 서울 강남서 3인조 강도행각…도주 10시간 만에 검거
- “여덟 살짜리가 뭘 아나”…조두순, 재판뒤 횡설수설
- 홍준표, 이강인 국대 발탁에 “당분간 국대 경기 안 본다”
- “운동장 100바퀴 뛰어”…초등 야구부 코치, 아동학대 혐의 재판행
- 박영규, ♥25세 연하와 네 번째 결혼…“분양사무소 갔다가 반해”
- “월급 60만원”…제주 도정뉴스 아나운서 ‘제이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