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상 진행자 “감옥 갈때 지나지 않았나”…트럼프 조롱 논란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3. 12. 11: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크쇼 진행자 키멀, 자타 공인 리버럴 인사
英코미디언 “배우들 아무 것도 몰라… 그냥 가만히들 계시라”
지미 키멀이 10일 캘리포니아주 돌비시어터에서 열린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10일 치러진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방송인 지미 키멀(Jimmy Kimmel)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감옥 갈 때가 지나지 않았냐”고 공개 조롱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영화제에서 정치인을 향한 저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키멀 스스로가 “제작진 만류에도 내가 한 것”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키멀 발언이 ‘사이다’라는 찬성 측과 영화제에서까지 꼭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야하냐는 반대 측 의견이 엇갈리며 오스카상을 놓고 미국 사회의 진보·보수가 또 다시 갈라진 모습이다. “연예인들의 ‘개념 코스프레’ 속 오스카상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인기 토크쇼 진행자인 키멀은 과거 민주당 의원들의 펀드레이징(선거자금 모금) 행사에 참여해왔고, 트럼프 정부에선 대통령과 측근들을 줄곧 비판해온 인사다. 과거 “토크쇼 호스트가 진보적(liberal)인 이유는 이 일이 지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자신에 대한 편파 논란을 받아치기도 했다. 이런 키멀의 정치 패러디 영상을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이다’라며 돌려봤다. 키멀은 올해 통산 네 번째로 시상식 진행을 맡았는데, 이날도 공화당 정치인을 저격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영화 ‘가여운 것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마 스톤을 소개하며 “에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 반박 연설을 한 여성처럼 어린아이 뇌를 가진 성인 여성을 연기했다”고 했다. 이는 지난 7일 바이든 국정연설에 대한 반박 연설에 나섰다가 어색한 톤과 과장된 감정의 연설로 비판 받은 공화당 최연소 상원의원인 케이티 브릿을 지적한 것이다.

키멀의 이같은 발언에 TV를 보고 있던 트럼프가 발끈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역대 오스카에서 키멀보다 최악인 진행자가 있었나” “그의 오프닝은 결코 될 수 없는 무언가 되려고 노력하는 평균 이하 사람의 멘트였다” “키멀을 치우라” “오늘 밤 정말 나쁜 쇼였고, 연결이 안 되고, 지루하고, 아주 불공정하다”고 했다. 여기에 키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상식 말미에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트럼프가 쓴 글을 낭독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아직 깨어 있다니 놀랍네요. 감옥에 갈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요?” 형사 기소돼 여러 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 상태를 꼬집은 것이다. 키멀은 “(제작진이) ‘아니, 아니 그것을 읽지 말라’고 했고, 나는 ‘트럼프 트윗을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진 만류에도 강행했다는 뜻이다.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돌비시어터에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키멀의 트럼프 저격에 객석에 앉아있던 영화 ‘바비’의 주연 배우 마고 로비 등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안 그래도 대선을 앞두고 분위기가 달아 오르고 있는 SNS는 곧바로 전쟁터가 돼 버렸다. “대단한 오스카, 미국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게 아니라 쪼개 놓고 있다” “그냥 솔직히 너무 재미가 없다” “공화당 사람들이 저랬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저런 사람이 이런 ‘쓰레기’ 같은 시상식으로부터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트럼프 측근인 리처드 그레넬 전 독일대사는 “트럼프가 오스카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줘 고맙다”고 비꼰 반면, 반(反)트럼프 인사인 조지 콘웨이는 “엽기적인 행동을 문제 삼고 비웃는게 트럼프를 다루는 방법”이라고 키멀을 두둔했다.

미국의 공식 석상에서 배우나 코미디언이 정치인을 조롱·풍자하는 ‘정치 패러디’를 하는 건 흔한 일이다. 백악관출입기자단(WHCA) 만찬에선 대통령이 온몸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내고 개그맨까지 섭외해 ‘자학 개그’도 선보인다. 하지만 보수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C)나 이른바 ‘워크(Woke·인종, 성별,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깨어 있다는 의미)’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이를 대하는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2020년 영국 코미디언인 릭키 제바이스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통해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말하는 일부 배우들을 향해 “당신들은 실제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어떤 것도 강연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만약 수상 한다면 올라와 상을 받고, 에이전트와 신(神)에 감사드리고 꺼져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