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브레턴우즈 체제는 가능한가? [배리 아이켄그린 - 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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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브레턴우즈 체제는 가능한가?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을 비롯한 경제 성장의 황금기에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던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회의가 열린 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1970년대, 조정 가능 고정환율제도라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한 이후 한국을 비롯해 곳곳에서 통화·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러나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탄생한 기관인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살아남았다. 문제는 80주년을 계기로 이 기관들과 이 기관들이 속한 국제통화·금융 시스템의 역할을 재고할 필요가 있는가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역사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필자에게는 브레턴우즈 회의가 개최된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의 마운트 워싱턴 호텔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 중 한 회의는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 모두 다 현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브레턴우즈 회의의 지적인 길잡이였던 저 유명한 영국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묵었던 방을 받고 싶어 한다. 케인스가 머물렀던 방은 하나뿐이니, 결국 주최자는 친구보다 적을 더 많이 만들게 된다.
필자는 신 브레턴우즈 합의와 신 브레턴우즈 체제의 가능성에 대해 오랫동안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지금도 회의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브레턴우즈에서 체결된 합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 미국의 자원에 의존했다는 사실(회의가 개최된 1944년에는 아직 전쟁이 격렬하게 진행 중이었음을 기억하자)과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의 자원이 필요하리라는 그들의 예상이 반영돼 있었다.
경쟁국인 독일과 일본은 뉴햄프셔에 발을 딛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대규모의 소련 대표단이 참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논의에 실질적 기여를 하기보다는 주로 호텔 지하 바에서 보드카를 마시는데 더 몰두했다. 그들은 합의를 끝내 비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작은 양허를 몇 개 제공했지만, 기본적으로 브레턴우즈에서 목표했던 바는 달성했다. 다른 나라들에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재건 지원을 포기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합의하는 것 말고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오늘날의 세계는 그때만큼 미국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새로운 브레턴우즈 회의가 열린다면, 경쟁국,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중국은 회의에 참석하고 결과물에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요구할 것이다. 중국 대표와 미국 대표가 합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는 두 번째 논점으로 이어진다. 즉 과거에는 전후 국제통화 시스템의 바람직한 구조에 대해 미국과 영국 간에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 영국과 영국 화폐인 파운드 스털링은 초기 체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체제를 구조화하는 방법에 케인스의 견해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두 가지 이유에서, 미국에 교섭 상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영국일 수밖에 없었다. 케인스가 만든 영국의 계획과 미국 재무부 관료였던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가 만든 미국의 계획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문헌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사실 그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했다. 양쪽 모두 개방된 세계 무역 체제를 지지하면서도 완전고용을 지향할 수 있는 제도를 원했다. 둘 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큼 엄격하거나 불안정하지 않은 안정적인 환율을 원했다. 양측은 모두 무역 관련 이유로 통화의 자유로운 교환성이 가진 장점을 인식했지만, 금융 흐름의 통제 수단을 유지하는 쪽을 지지했다.
정부가 자본흐름에 대한 통제 수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논점으로 이어진다. 즉 브레턴우즈 제도의 조정 가능 고정환율제도는 자본 통제 수단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제장치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투기 압력을 차단하고, 그들이 질서 있는 통화 조정을 계획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했다. 1990년대에 겪었던 전 국가적 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은 그런 통제 수단이 없을 때 투기 압력이 엄청나게 강해지며, 조정 가능 고정환율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할 수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금융시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회복하고 성장했다. 자본 통제 수단에는 점점 더 많은 구멍이 생겼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제한적 금융 조치를 완화하라는 IMF와 OECD의 압박을 받게 됐다. 그렇게 조정 가능 고정환율은 뒤로 밀려났다. 사실상 오늘날 모든 주요국(자본 통제력을 가진 중국은 주된 예외다)이 물가안정목표제를 기반으로 완전자유변동환율(free float)과 변동환율(dirty float)을 운용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새로운 현실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배적인 달러 기반 체제 역시 가까운 미래에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오랫동안 필자는 세계가 매우 점진적으로 더욱 다극화한 국제통화·금융 시스템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 시스템이 더욱 다극화한 세계 경제 구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매우 점진적”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흔히 달러의 무기화라고 일컫는 최근의 대러 금융제재로 인해 이 추세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달러의 명확한 대체 통화를 발행하는 중국과 유로 지역(Euro Area)에게는 각자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브레턴우즈 기관들 자체의 개혁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금융 안정성은 연방준비제도의 달러 스와프 한도(dollar swap line)와 환매조건부채권(repurchase facility)의 이용가능성에 의해 개선된다.
그러나 연준은 “우호적인” 국가들에만 달러 스와프를 제공하며, 그들이 말하는 “우호적인”의 정의는 자의적이다. 단기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은 마땅히 IMF의 역할이다. IMF는 탄력대출제(Flexible Credit Line), 단기 유동성 지원제도(Short-Term Liquidity Line) 및 신속금융제도(Rapid Financing Instrument)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또한 성평등이나 기후재정으로 주의를 분산시킬 것이 아니라 유동성, 감독 및 조정 지원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기후변화 감축 및 적응 자금은 IMF가 아닌 응당 세계은행의 영역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위험에 처한 대부분의 저소득국이 이미 많은 채무에 시달리고 있고 추가 대출금의 이자를 지불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므로, 세계은행은 차관보다는 증여를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차관에서 증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세계은행에 더 많은 자원이 요구된다. 시장에서의 추가 대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소득국의 고부채는 개혁의 마지막 영역인 국가채무 재조정과 연결된다. 채무조정공동체계(Common Framework for Debt Treatments)의 실패(2020년 이후 부채가 있는 60개의 저소득국 중 채무 재조정에 성공한 국가는 단 세 곳뿐이다)는 상황의 시급성을 말해준다. 이것은 IMF와 세계은행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채권국으로 구성된 파리 클럽(Paris Club)의 규범을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 중국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다른 국가가 압박을 가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 서방의 의견 불일치가 지속되는 한 그런 압박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 도입된 일종의 벌처펀드 방지법(anti-vulture-fund legislation)을 더 많은 국가들이 채택함으로써 민간 투자자들도 유입시켜야 한다.
국제 시스템의 운명이 중국과 미국의 결정에 좌우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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