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교육 강화하고 파트너 물색…'AI' 기회 찾아 분주한 재계 총수들
재계 총수들, 최근 AI 관련 공식 행보 늘어…"AI 시대 앞두고 역량 강화해야"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급속히 팽창하는 인공지능(AI) 시장 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재계 총수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뿐만 아니라 업종 불문 다수의 주요 기업 총수들이 AI와 관련한 공식 행보를 이어가며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12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2024 롯데 최고경영자(CEO) AI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AI 시대의 비즈니스 전략과 CEO의 역할, AI 등장 이후 비즈니스 변화 트렌드,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는 AI 로드맵과 핵심 과제, AI 플랫폼 아이멤버에 적용된 AI 기술·전략 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롯데그룹이 이러한 콘퍼런스를 개최한 것은 AI를 기반으로 회사를 혁신하겠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앞서 신동빈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AI 트랜스포메이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사업 혁신을 당부했고, 상반기 사장단 회의(VCM)에서도 과감한 혁신에 나서달라며 혁신 실행 방법 중 하나로 AI를 제시했다. AI를 단순히 업무 효율화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신동빈 회장의 판단이다. 이번 콘퍼런스는 혁신의 관점에서 AI 사업을 잘 다루기 위해선 CEO가 먼저 AI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각 사업군 총괄대표, 롯데지주 실장, 전 계열사 CEO와 최고전략책임자(CSO) 등 무려 110명의 주요 경영진이 참석했다. 롯데그룹은 이번 AI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전 직원의 AI 역량 강화를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AI 관련 웨비나와 포럼을 지속해서 진행할 방침이다.
롯데그룹의 AI 사업과 메타버스 등 신사업은 신동빈 회장의 장남이자 유력 후계자인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가 맡고 있다. 이 역시 AI 사업 육성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롯데지주는 오는 28일 개최 예정인 주주총회에서 신유열 전무가 담당하는 신사업과 계열사 신규 서비스 등을 주주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신사업 체험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테크 기업이 아님에도 AI 활용 방안과 관련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또 다른 기업 총수는 허태수 GS그룹 회장이다. 그는 지난달 말 계열사 IT 기획자, 개발자 등이 참석한 'GS GenAI 커넥트 데이'를 열고 생성형 AI에 대한 직원들의 활용을 당부했다. 허태수 회장은 "고객의 페인포인트(고충 사항)를 해결하는 것이 곧 사업의 본질이며, 생성형 AI와 같은 디지털 도구를 잘 다룰 수 있느냐가 앞으로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생성형 AI가 고객과 자신의 업무를 연결하는 지름길이라는 열린 자세를 가져달라"고 말했다.
그간 허태수 회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를 극복할 키워드로 AI를 포함한 '신기술'을 꼽아왔다. GS그룹은 최근 3년간 AI, 바이오, 기후 변화 등 분야에서 신기술 확보에 공을 들였고, 또 이를 GS 기존 사업과 접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허태수 회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 참석해 글로벌 기업·스타트업의 전시관을 두루 방문하며 신기술 동향을 살피고, 다양한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올해 들어 'CES 2024', 'MWC 2024' 등 AI를 주제로 열린 글로벌 행사에 모두 참석했다. 'MWC 2024' 현장에서는 삼성전자 스마트 반지 '갤럭시 링'에 큰 관심을 나타내며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사장)에게 "조금 더 논의할 부분이 있어 따로 한번 만나고 싶다"며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웨어러블 AI 분야에서 협력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 차원의 AI 강점에 대해 "ICT는 물론 에너지 기업 등 AI 관련 솔루션을 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며 "거의 모든 회사가 AI에 관계된 것들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래 먹거리로 AI를 지목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직접 AI 사업을 챙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AI 제품·서비스 개발뿐만 아니라 회사 운영 시스템을 AI로 혁신해 경영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를 찾아 AI 집사 로봇 '볼리'의 시연을 지켜보고 "갤럭시 웨어러블 제품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해 달라"며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은 페이스북(메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만나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외에도 HD현대가(家) 오너 3세인 정기선 부회장 역시 AI 사업화 추진에 나서고 있다. AI 기술이 HD현대의 미래 비전인 오션 트랜스포메이션(바다 대전환)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정기선 부회장은 전날 최수연 네이버 대표를 만나 AI 사업을 논의하는 등 협력 체계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HD현대와 팀네이버는 '클라우드 전환 및 AI 사업화 추진'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공식 일정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AI와 바이오, 클린테크 등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정한 'ABC' 사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I의 경우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성과를 이어나가고 있다. LG AI연구원은 최근 노벨상 수상자만 20명을 배출한 세계적 유전체 연구 기관인 미국 잭슨랩과 손을 잡았다. 알츠하이머와 암을 예측하는 AI 연구개발을 공동 추진할 예정인데, 구광모 회장의 역점 사업인 AI와 바이오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AI를 다양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총수들의 'AI 사랑'은 계속될 전망이다. 산업과 생활이 전면적으로 바뀌는 AI 시대를 앞두고 점차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업 환경이 어려워도 AI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기회'라는 판단 아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다만 기업마다 설계 구조를 짜고, 향후 어떻게 관리할지, 또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아직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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