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도전한 과학자들] ②구글 출신 이해민 "R&D예산 삭감 문제 단순치 않아"

김태희 기자 2024. 3. 1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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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프로젝트와 정치 닮아 있어…과기계 구심점 찾아야"
이해민 전 구글 시니어 프로덕트매니저(PM). 이영혜 제공

[편집자주] 동아사이언스는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 영입된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이들이 아직 국회에 발을 들인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 도전하는 계기, 국회의원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풀어보며 현재 한국 과학기술 현주소를 진단합니다. 정당과 관계없이 이름 '가나다' 순으로 게재합니다. .

조국혁신당은 창당 바로 다음 날인 3월 4일 이해민 전 구글 시니어 프로덕트매니저(PM)를 첫 번째 여성인재로 영입했다. 구글코리아를 거쳐 구글 미국 본사까지 총 15년 넘게 글로벌 IT 기업에서 근무한 전문가에게 '우리 모두의 미래, 과학과 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맡겼다. 

3월 7일 만난 이 위원장은 "구글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일과 국회에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똑 닮아있다"고 말했다. 

Q. 글로벌 IT 전문가가 왜 정치를 결심했나.

"우선 저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전자계산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딴 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3년 동안 국가전자도서관 사업을 맡아 하다가 미국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으나 구글에 입사하며 프로덕트매니저 일을 시작했을 때도, 구글을 떠나 스타트업 경영진이 될 때도 '전환'의 연속이었거든요.

당에서 영입 제안이 왔을 때는 생각치도 못한 일이라 놀랐지만 정치야말로 제 삶의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삶의 목표는 '행복의 확장'이에요. 저는 항상 제가 느끼는 행복을 제 가족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고 집 앞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이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란 사회가 좋아져야 그곳을 다니는 두 아이가 행복해지고 놀이터가 더 좋아져야 그네를 타는 아이들이 행복해지더라고요. 그동안 봉사나 기부로 행복의 확장을 이뤄왔는데 이제는 정치로 더 넓은 사회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역할하고자 합니다."

Q. IT 전문가가 정치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물론 정치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입니다만 저는 제가 적임자라 생각해요. 구글에서 한국 프로덕트매니저로 시작해 15년간 일하는 과정은 사용자의 불편함이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거나 제공할 방법을 고민한 뒤 전 세계 엔지니어들과 협업해 결과물을 내놓는 거였어요. 이 중 하나라도 못 하면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경우엔 달려가는 전차 위에 올라타서 더 빨리 달리게 할 때도 있고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경우도 있죠. 심지어는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역할을 맡기도 해야 했어요. 

상황에 따라 다른 전략으로 임해야 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과 대응 방식은 정치를 하는 방식과 완전히 맞닿아 있어요. 국민들의 문제나 필요를 파악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고, 각 분야의 전문가와 국회 내 다른 정치인들과 협업해 제도와 법을 만드는 일의 끝에 국민들이 정치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Q. 프로덕트매니저가 보는 한국 과학기술계는 어떤 상태인가.

"오늘날 과학기술계에 필요한 정치는 '무엇이 문제'인지 찾고 정의하는 단계가 아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저는 2022년 8월 구글에서 퇴사한 뒤 한국 스타트업의 최고제품책임자(CPO)로 일했어요. 구글 코리아와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던 당시 여러 규제 때문에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규제를 푸는 일은 단순하지 않아요. 어떤 규제는 한국 교육 과정과도 맞닿아 있고 또 어떤 규제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과도 맞닿아 있죠.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사이 불만과 요구는 계속해 쌓여가는 상태예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존처럼 '자문회의'를 열어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이 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운영을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저는 국가과학기술혁신청을 세워 이런 장을 열고자 합니다.

과학기술계의 '구심점'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인 인공지능(AI)이 도구로서 제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전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AI가 기술쪽에서만 얘기됐지만 지금은 전방위에서 쓰입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단백질 구조 예측 프로그램인 '알파폴드'처럼 모든 분야에 AI가 더해짐으로 연구와 개발의 속도가 빨라지죠. 모든 분야에서 AI가 사용된다는 것은 AI를 통해 과학기술 각 분야가 서로 만날 지점이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관리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합니다."

Q. 특별히 관심 있게 보는 법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과학기술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정부 최고정보책임자(CIO) 조직을 세우는 것 외에도 R&D 성과 평가 정책과 시스템을 개선하고 싶습니다. 한국 R&D는 관리에 집중돼 있습니다. 연구자가 어떤 것을 하겠다고 사전에 작성한 계획을 완료한 경우 '성공'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구조죠. 

하지만 새로운 연구와 혁신은 몇 년 전 써냈던 연구과제 제안서에 묶이면 안됩니다. 지금의 경직된 R&D 연구 운영은 연구자들에게 뒤떨어진 연구를 종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R&D 예산의 약 30%는 관리 비용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R&D 예산이 원래의 목표대로 쓰이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평가 정책과 시스템을 개선하겠습니다."

Q. 여성 개발자 출신으로서 여성 개발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이루고 싶은 바는.

"여성 개발자 생태계가 적극적으로 조성돼야 하는 이유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선순환이 일어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공계 진로를 희망하는 여학생들에게 개발자란 직업과 진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취업 과정을 도와 여성 개발자의 전체 숫자와 비율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개발자가 된 여성들이 리더 자리로 나아가고 또 후배 여성 개발자를 끌어줄 수 있어야하죠. 그동안 저는 '구글 여성 소프트웨어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생태계 조성에 힘써왔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여성 개발자 비율은 아직도 전체의 20% 전후에 머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리더 개발자 자리로 올라서는 비율은 굉장히 낮죠. 앞으로도 노력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각오를 들려 달라.

"저는 지금이 한국 정치의 '특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3년 R&D 예산 삭감 발표는 단순히 한 해의 예산을 깎은 것이 아닙니다. 내년에 다시 삭감된 예산을 복원해준다고 해도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번 예산 삭감은 과학기술계의 가장 중요하지만 약했던 고리인 비정규직 연구원과 대학원생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의 역사 안에서 과학기술 분야는 계속해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더 잘 오를 수 있게 바퀴에 동력을 더하면서요. 하지만 지금은 뒤로 급속히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과 체제 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결과물을 내보이며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한 제가 시민들의 한 발짝 앞에서 그 역할을 하겠습니다."

[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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